신약성경 원어 설교

[로마서 15장 주석 강해 설교말씀] 바울의 전도 사역(롬 15:1-33)

체데크 2022. 5. 1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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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5장에 바울은 교회 안에서 덕을 세우라고 권면합니다. 이방인들과 유대인 간에 화합해야 할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파가 생기면 안 됩니다. 대립적인 이념이 생겨도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오직 복음 안에서 연합해야 합니다.

 

바울의 전도 사역(롬 15:1-33)

 

1-13, 서로 받으라

[1-2]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강한 자는 믿음과 지식이 있는 자를 말하고, ‘연약한 자는 믿음과 지식이 부족하고 마음이 약한 자를 말한다고 본다. ‘연약한 자의 약점은 마음의 의심과 거리낌, 불안과 근심과 걱정, 잘못된 생각 등을 가리킬 것이다. 교회에는 믿음과 진리 지식이 부족한 자들이 있기 때문에, 믿음과 지식이 있는 자는 부족한 자를 비난하거나 너무 심하게 책망하지 말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고 그를 품어주고 감싸주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본다. 우리는 이웃의 유익을 위해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것이 사랑이다. 또 이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다.

[3]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일에 있어서 우리의 모범이 되셨다. 그는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셨다. 그는 사람들의 비방을 받으셨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왜 그러하셨는가? 그가 친히 말씀하신 대로, 그는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오셨기 때문이었다(20:28). 예수께서는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살지 않으셨고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 사셨고 죽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는 우리에게 본이 된다. 우리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구약시대에 유다 왕 다윗은 사람들에게 비방받는 것을 체험했고 그것은 메시아께서 당하실 고난의 예표가 되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런 저런 일들을 성경에 기록하신 것은 우리의 교훈을 위해서이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얻게 하는 데 일차적 목적이 있지만, 그것은 또한 구원 얻은 우리에게 인내와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하려는 목적도 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고난의 긴 세월을 통과한다. 하나님께서는 일들을 조급하게 행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고난의 현실 속에서 성경의 교훈을 통해 하나님의 인내와 위로를 얻고 소망을 가지게 된다.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소망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죽은 자들의 부활과 천국과 영생이 소망의 중요한 내용들이다.

[5-7]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돌리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하나님께서는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시며 인내를 교훈하시는 자이시다. 또 그는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고난의 세상을 사는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인내심과 위로로 힘을 내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서로 뜻을 같이하고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예수께서는 오래 참으시고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다. 그러나 그는 삼일 만에 부활하셨고 40일 후에 승천하셨다. 사랑은 서로 생각과 마음을 같이하는 것이다. 사랑은 서로 받는 것, 즉 서로 영접하는 것이며 상대에게 선을 베풀고 유익을 주는 것이다.

교회의 일치는 단지 외형적 일치가 아니고, 생각과 사상의 일치이어야 한다. 교인들의 마음과 뜻이 하나가 되는 것이 진정한 일치이다(고전 1:10).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와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만 가능한 일치이다. 우리가 과거에 여러 면에서 부족한 죄인들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용납하셔서 구원하심과 같이, 우리도 부족들과 약점들을 가진 형제들을 용납하고 서로 받아야 한다. 우리가 성경의 본질적 교리들에서 이탈한 이단들을 용납해서는 안 되지만, 우리는 어떤 비본질적 문제들이나 지엽적 문제들에 있어서 믿음이 연약한 형제들을 용납해야 하고 또 그들이 진리의 원만한 지식과 이해에 도달하게 하기 위해 기도하고 인내하며 노력해야 한다.

[8-12]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케 하시고 이방인으로 그 긍휼 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또 가로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저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또 이사야가 가로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으셨으나 조상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견고케 하시고 특히 할례 없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을 증거하기 위해 할례를 받으셨다. 이방인들은 할례 없는 자 즉 하나님의 언약에서 제외된 자들, 정죄된 자들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속죄의 피를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입게 되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로 인하여 죄로부터 구속(救贖)함을 얻었고 죄 용서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받으신 바가 되었다. 할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는 그리스도께서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듯이, 우리도 다른 성도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낮추고 오래 참고 서로 용납해야 하며, 사상과 고백에 있어서 하나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3]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서는 소망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죽은 자들의 부활과 천국과 영생을 약속하셨다. 그것들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의 주요 내용들이다. 그러나 성도는 미래의 것을 소망할 뿐만 아니라, 또한 현재 믿음 안에서 풍성한 기쁨과 평안을 누린다. 또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이런 복을 주시기 위해 성령을 위로자와 격려자로 우리 속에 보내주셨다. 믿음과 기쁨과 평안과 소망의 충만--이것이 성도의 정상적 삶의 모습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연약한 자들을 품고 그들의 약점을 감싸주고 그것을 친히 담당하자. 교회 안에는 항상 영적으로 혹은 신앙과 진리의 지식에 있어서 연약한 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고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연약한 성도를 기쁘게 하고 그에게 선을 베풀고 유익을 주고 덕을 세워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서로 영접하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 같은 이방인들, 하나님의 언약 밖에 있었던 자들, 죄와 어두움 가운데서 방황했던 자들의 허물과 죄를 구속(救贖)하셨다. 이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한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연약한 교우들을 사랑하며 오래 참고 서로 영접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인내와 안위로 소망을 굳게 가지자.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믿음 안에서 기쁨과 평안의 충만함을 누리며 또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의 확고함을 가지자.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며 죽은 성도들의 영광스런 부활과 복되고 영광스러운 천국과 영생을 소망하자.

14-33, 바울의 전도 사역

[14-16]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의 성도들을 내 형제들아하고 겸손하게 부른다. 그는 또 그들이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 즉 복음과 진리의 지식이 차서 서로 권할 수 있는 자들임을 확신한다고 말하였다. 바울은 그들이 복음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에게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은혜 즉 사도의 직무를 따라 담대히 몇 마디 썼다고 겸손하게 표현하였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배웠을지라도 아는 것을 다시 복습하는 마음으로 겸손히 서로 권면하고 또 권면을 듣고 받아야 할 것이다. 또 모든 성도가 다 제사장이지만(벧전 2:5, 9) 이방인들의 사도인 바울은 특히 자신을 이방인들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제사장이라고 말한다. 또 그는 이 전도의 일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하나님께 드려지는 일이 되기를 원한다. 전도와 구원은 성령의 사역이다.

[17-18]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바울의 전도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역사하셨다. 또 그 목적은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함이셨다. 그것이 구원이다. 로마서 1: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믿음은 마음의 순종이며(6:17) 참으로 믿은 자들은 하나님의 교훈에 순종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의 전도 사역에 성령으로 역사하셨다. 그는 바울을 통하여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셨다. 하나님의 복음이 말로만 전파되지 않고 성령의 능력으로 확증된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오늘날도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또 그 말씀과 더불어 활동하신다. 외형적인 기적들은 교회 안에서 오래 전에 사라졌을지라도 사람들의 심령 속에서 일어나는 기적적 변화의 역사는 교회 역사상 계속되어 왔다. 교회 확장의 역사는 내면적 기적의 역사이었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로 죄인들이 거듭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며 사모하며 기도해야 한다.

[19-21]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일루리곤은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북서쪽 해안 지방이며 그 서쪽 바다 너머에 로마가 있었다.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을 받아 전도 활동을 시작했던 바울은 소아시아는 물론,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에, 또 그 지방의 북서쪽 해안에까지 하나님의 복음을 충만히 전파하였던 것이다. 바울은 복음이 이미 들어간 지역은 피하고 복음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곳을 찾아 개척 전도에 힘썼다. 바울의 전도의 열심과 개척 정신은 오늘날 모든 전도자에게 본이 된다. 교회는 힘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하고 특히 복음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곳들에 전도자들을 파송해야 한다.

[22-24]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너희에게 가리라](전통본문).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교제하여 약간 만족을 받은 후에 너희의 그리로 보내줌을 바람이라.

바울은 로마로 가려고 소원하였지만, 그의 소원은 여러 번 좌절되었다. 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여러 번 막힐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소원이 성경적이고 우리의 이성의 건전한 판단에 따른 것일진대, 낙심치 말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그의 처한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였다. 자기의 일을 등한히 하며 다른 큰 일만을 꿈꾸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다. 자기에게 맡겨진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큰 일이 맡겨질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의 미래의 전도 계획은 로마를 거쳐 당시의 세계의 서쪽 끝인 서바나 곧 스페인까지 가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의 소원이었고 그의 사명의 계획이었다. 그는 로마의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며 힘을 얻고 그리로 가기를 원했다. 성도의 교제는 전도자들에게 위로와 힘이 될 것이다.

[25-27]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바울에게는 전도가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구제헌금도 중요하였다. 그것은 선한 열매의 귀함 때문이었다. 성도의 구제헌금은 그의 믿음과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한다. 우리가 참으로 주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말뿐 아니라, 시간과 수고와 돈도 포함할 것이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교인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 돕기를 원하였다. 실상, 이방인 교회는 유대인 교회에 빚진 자이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을 통해 구원의 복을 받았다. 그러므로 유대인 교회가 어려울 때 이방인 교회가 물질로 그들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구원의 가치는 물질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크다.

[28-29]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복음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 성도들의 구제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는 그들의 사랑의 열매인 구제헌금을 예루살렘 교인들에게 전달하고 성도들의 사랑을 확증한 후 로마를 지나 서바나로 가려고 계획했다. 그때 그는 로마 교인들에게 충만한 축복, 곧 말씀의 축복을 가지고 갈 것을 확신하였다.

[30-33]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바울은 로마의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또 성령의 사랑을 힘입어 기도를 권면하였다. 그는 그들이 그와 힘을 같이하여 그를 위해 기도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합심 기도는 힘이 있다. 바울은 특히 자신을 위해 기도를 요청하였다. 이 세상에 다른 사람의 기도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부족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바울이 요청한 기도는 세 가지이었다. 첫째는 유대의 순종치 않는 자들로부터 구원해주시기를 구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지만, 하나님의 복음과 교회를 위해 살 이유가 있다. 둘째는 예루살렘 교인들에게 구제헌금을 전달함으로 그들을 섬기는 일이 그들에게 받음직하게 되기를 구하라는 것이다. 구제는 구제받는 사람에게 기쁨이 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그들에게 나아가게 하시기를 구하라는 것이다. 로마로 가기를 원한 바울의 소원은 몇 번 좌절되었으나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져 그들과 교제하며 며칠 편히 쉬기를 원하였다.

바울은 끝으로 평안의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기를 기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평안의 하나님이시며 참된 평안은 하나님으로부터만 온다.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3:16에서도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노라. 주는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실지어다라고 말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바울처럼 모든 교우를 다 형제로 여기며 겸손히 처신하자. 우리는 남을 가르치고 그의 믿음을 지배하려 하지 말고(고후 1:24) 그를 돕는 심령으로 겸손히 처신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성령의 능력을 간구하자. 하나님의 일은 오늘날도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 개인의 성화나 영혼 구원의 일이나 전도나 개교회나 전체교회의 건립의 일이 다 그러하다.

셋째로, 우리는 바울처럼 열심으로 일하자.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개인적, 가정적 일이나 직장의 일이나 교회 일이나 열심으로 하자.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어려움이 많음을 예상하고 낙심치 말자. 우리의 소원과 현실은 다를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일이 다 이루어질 것을 믿고 참고 충성해야 한다.

다섯째로, 우리는 가난한 성도들을 섬기며 구제하는 일도 힘써야 한다. 구제와 선행은 구원의 열매이다. 그것은 전도만큼이나 중요하다.

여섯째로, 우리는 다 부족한 자이므로 기도의 교제를 힘쓰자. 특히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서로 기도를 부탁하며 위하여 기도하자.

[고린도전서 교회 개혁주일설교말씀] 대언과 방언의 은사(고전 14: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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