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3장에서는 성도들이 국가의 권세에 대해서 복종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나라에 대한 충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향하여 빛과 진리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성도들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야 합니다.
제목: 하나님께 더 가까이: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롬 13장)
설교자: 윤사무엘 목사
본문: 로마서 13:1~14
요절: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롬 13:8)
주제: 율법의 완성인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자.
2월 달은 경건의 달로 지킵니다. 경건 생활의 실천으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갑시다. “불경스럽고 늙은 여인들에게나 걸맞은 꾸며낸 이야기를 버리고 오히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훈련하라. 몸의 훈련은 유익이 적지만 경건은 모든 일에 유익하여 현재와 미래에 생명의 약속을 소유하게 하느니라.” (딤전 4:7-8). 올해는 부활절이 예년에 비해 보름 정도 늦습니다. 3월 2일 ‘재의 수요일 Ash Wednesday’이며, 4월 10일 종려주일, 4월 15일 성금요일, 4월 17일 부활절입니다. 이달에 경건 훈련하고 3월에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4월에 부활하는 체험을 합시다.
지난 주일에 이어(롬 12장, 거룩하고 열납되는 산 제물로 예배 회복, 성실한 봉사, 5가지 그리스도인의 강령, 선으로 악을 이김) 오늘은 로마서의 윤리 부분인 13장을 강해합니다. 롬 13장은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생활에 대해 훈계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선행의 실천을 강조합니다. 경건한 성도는 세속사회에서도 선하게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성도가 세속국가의 통치자들에 대해 가지는 의무에 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1. 세속국가 통치자들에게 복종하라(롬 13:1-7)
(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지 않은 권세는 없나니,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라. (2) 그러므로 누구든지 권세자에게 거역하는 자는 하나님의 정하신 바를 거역함이니, 거역하는 그들은 스스로 저주를 받게 되리라. (3) 이는 다스리는 자들은 선행에 대해 두려움이 되지 아니하고 악행에 대해서만 됨이니, 네가 권세자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기를 원하느냐? 선을 행하라. 그러면 그에게서 칭찬을 받으리라. (4) 그는 너에게 선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일꾼이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면 두려워하라. 이는 그가 헛되이 칼을 가지고 다니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그는 하나님의 일꾼이요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를 행하는 보응자니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반드시 복종해야 하나니, 진노 때문만이 아니라 양심 때문이기도 하니라. (6) 이러한 연유로 너희가 세금을 내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바로 이 일에 전념하게 하려 함이니라. (7)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의무를 다하되, 국세를 낼 자에게 국세를 내고, 관세를 낼 자에게 관세를 내며,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고,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1절.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지 않은 권세는 없나니, 모든 존재하는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라.”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의무를 교훈합니다. ‘위에 있는 권세자들’은 세속국가의 통치자들을 말하는데 당시 로마의 황제, 유다의 총독과 헤롯왕, 공무원 등을 지칭합니다. 성도는 세속국가의 통치자들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세속 국가의 통치자들의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권세들은 다 하나님의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회의 질서와 안정을 위해 그것들을 세우셨습니다. 악한 정부라도 무정부 상태보다는 낫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도서 3:1에서도,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라”고 권면합니다. 1981년도 장로회신학대학원(장신대) M.Div 과목인 “신약성경 석의학”(박창환교수)을 수강할 때 이 구절로 리포트를 쓴 적이 있는데, 당시 군사 정권에 항거할 때였습니다. 유신 정권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롬 13:1-7이 가장 많이 인용이 되었는데, 저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지 않은 권세는 없나니, 모든 존재하는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라.”에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권세를 받은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정치를 해야함을 주장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과는 투쟁해야 합니다
2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권세자에게 거역하는 자는 하나님의 정하신 바를 거역함이니, 거역하는 그들은 스스로 저주를 받게 되리라.” 세속국가 통치자들의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므로, 그들을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국가의 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기의 선결 조건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모든 통치자, 공무원은 하나님의 법대로 통치해야 합니다. 이런 통치자들을 거스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취하게 됩니다. 통치자들에 대한 순종은 신앙 문제에 충돌이 없을 경우에만 해당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명령에 복종할 수는 없습니다. 종교적 의무와 국가적 의무가 충돌할 때 성도는 당연히 하나님의 법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 섭리주, 주님이시니 세속국가의 통치자들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으십니다. 성도는 심지어 핍박을 받더라도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의 법을 순종해야 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풀무불에 던지우면서도 왕이 내린 우상숭배 명령을 거절했던 것처럼, 또 예수님의 사도들이 매맞음과 옥에 갇힘을 당하면서도 전도를 금하라는 유대 지도자들의 명령을 순종치 않은 것처럼, 우리에게는 하나님 명령 순종이 첫 번째입니다. 일제 강점기때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투옥되거나 순교한 성도들도 많았습니다. 6.25때 주일날 예배드린다고 순교한 성도들도 많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으면 자여손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십계명 2계명에서 “너는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 말지니라. 이는 나 주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임이니, 나를 미워하는 자들의 삼사 대까지 그 아비들의 죄악을 자식들에게 미치게 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수천 대까지 자비를 나타내리라.” (출 20:5-6)
3-4절. “이는 다스리는 자들은 선행에 대해 두려움이 되지 아니하고 악행에 대해서만 됨이니, 네가 권세자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기를 원하느냐? 선을 행하라. 그러면 그에게서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너에게 선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일꾼이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면 두려워하라. 이는 그가 헛되이 칼을 가지고 다니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그는 하나님의 일꾼이요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를 행하는 보응자니라.” 모든 권세자들은 하나님의 선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을 두 번씩이나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부릅니다. 세상 통치자들은 하나님의 일반은총 아래서 사회의 질서와 최소한의 도덕성 유지를 위해 세워진 자들이어야 합니다. 만일 그런 통치자들이 없고 사회에 법들과 규칙들이 없어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다면, 사회가 얼마나 더 혼란해지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세속사회가 극단적으로 악해지거나 혼란해지지 않도록 일반은총으로 보호하시며 이를 위해 세속국가의 통치자들과 그들의 양심과 옛부터 전래되어 내려오는 관습들과 규례들이나 그들이 제정한 법들을 사용하십니다. 이런 점에서 세속국가의 통치자들은 ‘하나님의 일꾼(사자)’입니다. 세속국가 통치자들의 임무는 백성들의 선을 격려하고 악을 징벌하는 것입니다. 그들부터 솔선수범 선을 행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그들이 두려움이 되지 않으나,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두려움이 됩니다. 그들은 악을 징벌하기 위해 칼을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칼의 권세, 즉 악한 자들을 죽일 수도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사회의 질서 유지와 공의의 집행을 위해 극악한 죄인의 사형도 가능합니다. 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3장 2절의 진술대로, 이 칼의 권세에 근거해서 세속국가는 자신의 안녕과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합법적인 전쟁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사형과 합법적 전쟁의 정당성을 인정합니다.
5절. “그러므로 너희가 반드시 복종해야 하나니, 진노 때문만이 아니라 양심 때문이기도 하니라.” 성도는 형벌이 두려워서 뿐만 아니라, 또한 양심을 인해 세상 통치자들의 명령에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존중하고 그들이 정한 바가 하나님의 정하신 것인 줄 알고 복종해야 합니다.
6절. “이러한 연유로 너희가 세금을 내는 것이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바로 이 일에 전념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러한 연유로’란 사회에서 권선징악(勸善懲惡)과 도덕적 질서 유지의 일을 말합니다. 세속국가의 통치자들은 하나님의 일꾼들이며 그들이 바로 이 일을 위해 항상 힘쓰고 수고하는 것입니다. 국민의 세금은 일차적으로 그런 일을 위해 쓰이는 것입니다.
7절.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의무를 다하되, 국세를 낼 자에게 국세를 내고, 관세를 낼 자에게 관세를 내며,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고,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국세’라는 원어(포로스 foros)는 모든 국민에게 부과되는 세금이며, ‘공세’라는 원어(텔로스 telos)는 지방세, 소득세, 통행세, 관세 같은 세금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금을 내는 일도 법에 정한 대로, 국세도 내고 지방세도 내며 재산세도 내고 소득세도 내어야 할 것입니다. 국민이 바치는 세금이 없다면, 세속국가 통치자들은 그들의 정당한 임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마 22:21, 막 12:13~17). 또한 일년에 반 세겔씩 내는 성전세(레위일들 생활비)도 납부하십니다(마 17:24~27). 또 성도는 세속사회에서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고 존경할 자를 존경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도 세속국가의 통치자들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에 관해 베드로전서 2장에서 교훈하기를,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님을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고 합니다(벧전 2:13-15). 세속 통치자들의 주된 직무는 권선징악을 통한 사회의 질서 유지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나라를 다스려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2:1-2에서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는 세속국가의 통치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세속 사회의 평안과 질서를 위해서입니다. 사회가 평안해야 우리도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뜻을 행하는 경건하고 선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율법의 완성인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롬 13:8~10)
(8)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어떤 빚도 지지 말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이룬 것이니라. (9) 그것은 "너는 간음하지 말지니라, 너는 살인하지 말지니라, 너는 도둑질하지 말지니라, 너는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너는 탐내지 말지니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 가운데 다 들어 있음이니라. (10) 사랑은 자기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8~9절. 물질적 빚이 아니라 사랑의 빚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습니다. 부모님, 형제자매, 교회, 선생님, 이웃, 친구, 공동체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 사랑의 빚이 있습니다. 일주일 전 CBS의 <새롭게 하소서>에 “한국의 '거지소년', 미 우주항공연구소 수석연구원이 되기까지”라는 부제가 있어 관심있게 시청했습니다. 한국전쟁 후 약 50년간 20만명의 입양자녀들을 해외에 보내어 한국은 사랑의 빚을 많이 지고 있습니다. 박성철목사님(PCUSA 은퇴목사)은 미국에 입양된 한인계 미국인들을 위한 봉사사역 목적으로 한국입양사역(KAM, Korean Adoptees Ministry) Center를 수십년간 운영하고 계십니다미국에 입양된 한국인 자녀(adoptee)들 가운데 정치인, 법조계, 학자, 경영인 등 성공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이들이 정기적인 모임도 가지며 친교를 하고 있습니다. 어린 입양인들의 부모님 모임, 가족 모임도 지역별로 있습니다. 제가 프린스톤한인장로교회를 시무할 때(14년간) 매 추석때마다 뉴저지와 필라지역에 거주하는 한인 입양 가족들을 초청하여 picnic을 가졌습니다. 한국음식(불고기, 김치, 잡채, 나물, 만두, 떡)을 제공하고, 한복입기, 태권도 시범, 붓글씨로 이름을 써주고, 윷놀이, 널뛰기, 고무줄, 연날리기 등 행사를 하였습니다. 매년 100-200여명씩 참석하셨습니다. 또 6월 말에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가정(부부)을 초청하여 대접하며, 고전무용, 한국을 상징하는 부채, 인형선물드리고, 한국의 발전에 대한 영상을 보여드리고, 한국방문을 안내하곤 했습니다. 50-150명 정도 참석했습니다. 매년 이 행사를 기다렸습니다. 이분들 자녀 가운데는 대학총장, 시장, 공무원들이 많아 좋은 친교를 가졌습니다.
지난주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하신 Steve Morrison(최석천)장로님(LA 은혜한인교회)은 시편 116:12-14(“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이다”)를 좋아하시면서 사랑의 빚진 자로 자신도 14세 청소년을 입양했습니다. 장로님은 1957년경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가 되며 감옥에 투옥되었고, 어머니는 집을 나가셔서, 다섯 살에 고아가 되어 동생 최대천(63세 정도)과 함께 먹을 것을 찾아 구걸하며 거리를 헤매 다녔답니다. 형제는 한겨울에도 다리 밑에서 웅크리고 잤고 며칠씩 굶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5살부터 13살까지 복지원에서 자란 석천에게 새 삶을 열어 준 분이 홀트아동 복지회를 통해 양부모 존 모리슨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14살 때 입양되어 미국 유타주에서 성장하며, 닐 암스트롱(Neil Alden Armstrong, 1930~2012, 39세인 1969년 7월 달에 아폴로 11호에 탑승, 달에 착륙, 인류의 첫발자국 남김)이 졸업한 Purdue University에서 우주 공학을 전공, 졸업후 NASA 수석 연구원이 됩니다. 여기서 은퇴하고 지금은 한국입양홍보회(MPAK, Mission to Promote Adoption in Korea)를 창설하여 한국사회의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바꾸고, 국내입양을 활성화시키고 있습니다. 5월 11일을 입양의 날로 제정하여 매년 행사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우리의 아이들을 외국인들에게 보내 키우게 할 것인가. 우리들부터라도, 이제부터라도 한국의 아이들은 한국인이 키우자.” MPAK는 기독교 신앙에 기초,'모든 아이들이 자신들의 가정을 갖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믿음속에 국내입양을 홍보, 장려하기 위하여 설립되었습니다. 모리슨 장로님의 인생은 어떤 드라마보다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자기를 입양해 준 미국의 부모님의 헌신적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자신은 홀트아동복지회 이사로 봉사하면서, 한국 입양홍보회를 통해 입양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주고 있습니다. 사랑은 상처를 치유합니다. 지금도 사랑의 빚을 갚는 삶을 살고 계십니다.
입양문제와 유사한 사역으로 베이비박스(baby box)가 있는데,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기를 키울 수 없는 산모가 작은 철제 상자 안에 신생아를 두고 갈 수 있도록 유기되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작년 여름에 김인성 선교사님의 안내로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주사랑공동체교회를 방문하여 이종락목사님을 통해 베이비 박스 사역에 대해 브리핑을 받았습니다. 이 목사님은 교회 앞대문에 버려진 신생아가 저체온증으로 숨질 뻔한 일을 겪고 나서 설치했다고 합니다. 이곳의 베이비 박스는 담장을 뚫어 만든 것으로 가로 70cm, 높이 60cm, 깊이 45cm의 공간으로 되어있고, 담장 벽에는 ‘미혼모 아기와 장애로 태어난 아기를 유기하거나 버리지 말고 여기에 넣어 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아기를 두고 가면 벨이 울리며 봉사자들이 나가서 아기를 방으로 데리고 키우며 입양을 하기도 합니다. 이들이 장성하면 사랑의 빚을 갚게 하는 사역을 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사랑의 빚을 갚아야 하지만, 또한 이웃에게 물질적 빚도 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혹시 부득이 빚을 진 경우는 떼어먹지 말고 속히,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내가 받을 것은 혹 잊어도 괜찮지만, 줄 것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사랑의 빚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거래가 아니고 대가성 행위가 아닙니다. 사랑은 그냥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받는 자에게는 언제나 빚입니다. 그러나 늘 무거운 짐이 되는 빚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서 그분의 명하신 새 계명대로 서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서로 사랑의 빚을 많이 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정상적입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빚을 갚는 방법입니다. 그것이 율법의 정신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룬 것과 같습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 19:18) 십계명 5~10계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부모에게 효도하며, 살인하지 말고 이웃을 사랑하며, 간음하지 말고 아내와 남편을 사랑하며, 도둑질하지 말고 남의 물건을 지켜주며,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 증거하지 말고 진실하고, 남을 물건을 탐내지 말고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고 그의 인격과 그의 생명과 그의 순결성과 그의 소유와 그의 명예를 존중하고 그의 배우자의 행복과 그의 자녀들의 행복을 존중한다면, 우리는 살인하거나 간음할 수 없고 도적질하거나 거짓 증거할 수 없을 것이며, 또 남의 것을 탐내지도 않을 것입니다.
10절. “사랑은 자기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이기적, 육욕적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거룩한 사랑입니다. 그것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습니다. 참사랑은 이기적이지 않고 남을 배려하며 악을 행치 않습니다. 우리에게 사랑이 있다면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치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십계명은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 몸같이 사랑하는 것으로 요약됩니다(敬天愛人, 마 22:37-40). 인간관계의 모든 계명들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내게 사랑이 있다면, 나를 낳으시고 기르신 부모님을 공경하고 다른 이들의 생명과 순결성과 소유와 명예를 귀히 여길 것입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천국은 사랑의 나라입니다. 주님께서는 땅 위의 교회도 이런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며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돌보며 상대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 인간 관계가 우리가 가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사랑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라는 교훈을 주신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즉 빛의 갑옷을 입으라(롬 13:11-14)
(11)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 때를 아노니, 지금은 바로 잠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이로다. 이는 지금이 우리가 처음 믿은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음이라. (12) 밤이 많이 지났고 낮이 가까웠느니라. 그러므로 어두움의 행위를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흥청거리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방탕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채우기 위하여 육신을 위해 계획하지 말라.
11절.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영광의 구원입니다. 그 날은 의인의 부활과 변화의 날입니다. 그날에 우리는 몸의 모든 죄성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 영화로워질 것입니다. 이날이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웠습니다. 이미 사도 시대에 성도들은 종말 의식을 이미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주님의 재림의 때가 더욱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는 것은 경건과 순종의 삶,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삶을 가리킵니다.
12절. “밤이 많이 지났고 낮이 가까웠느니라. 그러므로 어두움의 행위를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자.” 밤과 낮은 대조됩니다. 밤은 저녁부터 아침까지요, 낮은 아침부터 저녁까지입니다. 밤이 깊다는 것은 배교와 불신앙, 부도덕과 죄악의 밤이 깊다는 뜻입니다. 낮이 가깝다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간이 가깝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어두움의 일은 죄악된 일을 가리키고, 빛의 갑옷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행실을 가리킵니다. 빛의 옷을 빛의 갑옷이라고 표현한 것은 성도가 이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굳센 마음으로 무장하고 고난을 각오하고 마귀의 여러 가지 시험을 이겨야 함을 말합니다.
13-14절.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흥청거리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방탕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채우기 위하여 육신을 위해 계획하지 말라.” 낮에는 사람들이 바른 정신으로 일해야 합니다. 술 취하면 실수하며 단정함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낮에는 술 취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감정이 흥분하면 실수하고 단정함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고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서로 싸우거나 시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성도로서 합당치 않습니다. 14절에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의를 붙잡고 그의 성품을 본받고 그의 교훈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정욕을 위해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것은 부도덕한 일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죄악된 일은 사람의 욕심에서 나옵니다. 육신의 죄악된 성질의 중심에는 이기적인 욕심이 있는 것입니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깝듯이, 이 세상에 방탕과 술 취함과 음란과 호색과 시기와 싸움이 많아질수록,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국이 점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모든 어두움의 일들, 곧 방탕과 술 취함과 음란과 다툼의 모든 죄악된 일을 벗어버리고, 빛의 옷, 의의 옷,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옷 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경건과 의와 거룩, 그리고 그의 온유와 겸손과 사랑으로 우리의 인격과 삶을 단장해야 합니다.
19세부터 10년간 마니교(Manichaeism, 영지주의 분파)에 빠져있던 어거스틴(Augustine, 354~430)은 어머니인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의 결실로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밀라노에 있는 동안 어머니의 권유로 당시 밀라노 교회의 감독이었던 암부로스(Aurelius Ambrose, 340~397)의 설교를 듣게 됩니다. 처음에는 설교 스타일을 연구하려는 마음으로 갔으나 점점 영혼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암부로스를 통해 그는 기독교가 지성적이고 세련될 수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어거스틴에게는 거듭남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추한 정욕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는 모습을 보면서 절망과 수치심에 빠지곤 했습니다. 386년 8월말, 그는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 알리피우스와 마주앉아 이집트의 수도사 안토니의 놀라운 희생과 거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대화는 그를 더 깊은 영적 갈등과 번민으로 몰고 갔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그는 알리피우스를 떠나 자신이 묵는 집의 정원으로 나아갑니다. 거기서 그는 머리를 쥐어뜯고 두 주먹으로 이마를 치며 괴로워하고 있을 때 밖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의 소리를 듣고 로마서 13장 13-14절을 읽고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참회록 Confessiones, AD 397-400』에 보면 다음과 같은 간증을 합니다.
“나는 무화과나무 아래 털썩 주저앉았고 내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갑자기 이웃집에서 어떤 아이의 노래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소년의 음성인지 소녀의 음성인지 구분할 수 없었지만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 Take and read it’라는 구절이 반복적으로 들렸다. 그것을 듣고 그런 소리를 내면서 노는 아이들의 놀이가 있는지 열심히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전에 결코 들어본 적이 없는 노래였다. 그래서 나는 급히 알리피우스가 앉았던 자리로 돌아갔다. 거기에 사도바울의 서신을 포함한 책(신약성경)을 두었는데 나는 그것을 집어 들고 펴서 제일 먼저 내 눈에 닿는 부분을 조용히 읽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 나는 더 읽지 않았다. 더 읽을 필요가 없었다. 그 구절의 끝부분에 이르는 바로 그 순간에 마치 확신의 빛이 내 마음에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고 모든 의심의 어두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마침내 어거스틴은 거듭났습니다. 그는 교수직을 사임했고 두 번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독교의 변증가요, 사상가요, 신학자로서, 그리고 북아프리카 히포의 주교로서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임박한 종말신앙이 어거스틴을 회심시켰듯이 우리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구체적으로 영접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Now and hear!”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결을 실천합시다. 어두움의 일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읍시다. 그것은 의와 거룩, 선과 사랑의 인격과 삶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가 없는 거룩한 인격과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모든 위정자들이 하나님의 법대로 정치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정치하는 지도자들에게 순종하게 하옵소서. 율법의 완성인 사랑의 빚을 갚는 생활을 하게 하시며 종말이 임박한 말세지말에 어둠의 일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주님의 빛의 갑옷으로 무장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시편 42편 주석 강해설교] 낙망 중에 하나님을 바람(시 4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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