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12장 히브리어 성경말씀 중에서 가나안으로 이사하는 아브라함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을 때 부르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가나안 땅으로 갈 마음이 없었습니다. 하란 땅에 오니 정착이 되었고 눌러앉아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아브라함이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하란 땅에서 아브라함을 불렀을 때 순종하고 떠나게 됩니다.
가나안으로 이사하는 아브라함(창 12:1-9)
1절 바요메르 아도나이 엘 아브람 레크 레카 메아르체카 우미몰라드테카 우미베이트 아비카 엘 하아레츠 아쎄르 아르에카
성 경: [창12:1]
창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아브람의 소명]
여호와 -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호와'란 신명칭을 본장에서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은 본서 기자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선택된 백성을 향한 그분의 언약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증거해 준다<2:4>.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 일반 사람들도 들을 수 있는 말씀으로 아브람의 계시를 받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람의 심령 속에 내적으로 임했는지 분명치 않다. 다만 '이르시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마르'의 의미가 대개 '말한다', '이야기한다'란 점에 비추어 볼 때 전자일 가능성이 크다.
본토 - 혹자(Calvin)는 이를 '우르'로 이해하고 아브람이 구체적 소명을 받은 것을 우르에 있을 때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11:31). 그러나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후 떠난 곳이 '하란'인 점에 입각할 때(4절) 이는 하란 , 더 나아가 우르와 하란을 포함하는 메소포타미아 전 지역을 가리키는 것임에 분명하다.
떠나...가라 - '누가 네 뒤에 남든지 상관 말고 너를 위하여 떠나라'는 의미이다. 기독교 역사는 이러한 떠남과 분리의 역사인데 오늘날 우리 성도들 역시 죄악 된 이 세상에서 분리되어 의와 거룩을 좇는 순례의 길을 떠나야 한다(롬 12:2).
내가 네게 지시할 땅 - 직역하면 '내가 네게 보여 줄 그 땅'. 여기서 '보여 줄' 은 미래 미완료형으로 아직까지는 보이지 않으나 미래에는 구체적으로 보일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땅'은 아브람으로서는 불명확하나 하나님으로서는 이미 작정해 놓은 가나안 땅을 의미한다.
2절 베에에세카 레고이 가돌 바아바레케카 바아가델라 쉐메카 베흐예 베라카
성 경: [창12:2]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아브람의 소명]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 Living Bible은 문두(文頭)에 '네가 그렇게 하면'(If you do)이란 말을 부기하고 있다. 한편 여기서 '큰 민족' 이란 단순한 숫자적으로 인구가 많은 것뿐 아니라 영적으로 위대한 민족을 가리키는 바 곧 '이스라엘'에 적합한 명칭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그의 적은 수의 친척을 떠나기만 하면 (1절) 그 보상으로 오히려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주시리라고 보장하셨다.
네게 복을 주어 - 아직껏 무자(無子)한 아브람(11:30)이 많은 무리의 아비가 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있는 근거이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니 그분께서 원하시고 또한 복을 내려 주시기만 하신다면 인간적인 모든 제약은 사라지고 만다(롬 4:18).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 직역하면 '내가 네 이름을 크게 할 것이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유명케 하여 그 이름이 길이 회자(膾炙) 되게 하시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아브람의 이름은 위대하게 되었다. 즉 열국의 아비(17:4, 5), 선지자(20:7), 하나님의 방백(23:6), 여호와의 종(시 105:5, 6) 하나님의 벗(약 2:23) 등의 명칭을 부여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이름은 선민 이스라엘의 시조(始祖)로서, 또한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는 영원한 믿음의 조상으로서 길이 남게 되었다. 이처럼 사람을 높이시는 이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이시니 겸손한 자는 높이 들림 받지만 무릇 스스로 높아지려는 자는 낮아지고 말 것이다 <1, 2, 3절 강해>.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예 베라카'는 곧 '너는 복이 될지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에 대하여는 다양한 견해가 제시된다. (1) 아브라함으로 인한 물리적 풍요(슥 8:12)를 의미한다.(Gesenius, Rosenmuller) (2) 사람들이 상호 축복의 양식(樣式)이 된다는 뜻이다.(Calvin, Knobel, Kimchi) (3) 여기서 복은 영적인 복으로서 곧 아브라함은 그로 말미암는 복의 기준이 되리라는 뜻이다(Keil, Delitzsch, Kalisch). 이상의 견해를 종합해 볼 때 물론 첫 번째와 두 번째 견해도 세 번째 견해다. 그런데 여기서 아브라함으로 말미암는 영적 축복이란 단순한 아브라함 개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그의 가계(家系)에서 약속된 '여자의 후손'(3:15)인 메시아가 나리라는 뜻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과 영생은 누구든지 그를 믿기만 하면 미칠 수 있는 것이니(살후 2:13, 14) 그 같은 메시아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가리켜 '복의 근원'이라 칭함은 당연하다.
3절 바아바라카 메바르케이카 우메칼렐르카 아오르 베니브르쿠 베카 콜 미쉐프호트 하아다마
성 경: [창12:3]
창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아브람의 소명]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내가 저주 하리니 - 하나님과 아브람과의 각별한 관계를 나타내는 이 말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상호 공수 맹약을 맺으시겠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제 아브람의 이웃은 아브람과의 관계에 따라 그들도 각각 하나님께 축복과 저주를 받게 될 것을 의미한다. 이 원리는 신약 시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 여기서의 '저주'(칼랄)는 '감소시키다', '낮게 여기다'는 뜻으로 곧 남을 멸시하거나 하찮게 여기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것은 하나님과 특별 맹약을 맺은 하나님의 종 아브람을 멸시 여기는 행위는 곧 하나님을 업수히 여기는 행위가 된다는 뜻이다.
내가 저주하리니 - 여기서의 '저주'(아라르)는 하나님의 법에 따른 공적 저주를 의미하는데 이에는 구체적이고도 직접적인 징계 조처와 형벌이 따르게 된다(삼상2:30, 31, 32, 33).
땅의 모든 족속이...얻을 것이니라 - '복의 근원'(2절)에 대한 보충, 확대 설명이다(갈 3:8). 축복은 타락 결과 인간에게 주어진 저주(2:17;3:16, 17, 18, 19)와는 정반대 되는 것이니, 이러한 축복은 단순한 물질적 축복뿐 아니라 죄를 사해 주는 영적 축복을 포함한다(Calvin, Keil, Luther). 즉 본질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구 상의 모든 민족이 자신의 죄에 대하여 해결 받고 진정한 삶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되리라는 복된 언약이다(눅 24:47).
4절 바옐레크 아브람 카아쎄르 디베르 엘라이브 아도나이 바옐레크 이토 로트 베아브람 벤 하메쉬 솨님 베쉬브임 솨나 베체토 메하란
성 경: [창12:4]
창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가나안으로 향하는 아브람]
여호와의 말씀 - '말씀'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바르'(*)는 '명령'을 의미한다(27:19;왕상 12:12). 따라서 이는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행동의 절대 기준으로 삼았으며 말씀의 권위를 존중, 어김이 없었음을 나타내 준다(22:1, 2, 3, 4, 5, 6, 7, 8, 9, 10, 11, 12).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 롯이 아브라함과 함께 메소포타미아를 떠난 사실이 거듭 언급되고 있는 까닭(11:31)은 그가 이후 아브라함과의 관계에서 많은 족적을 남겼기 때문이다(13:1-13;14:13-16;19:1-28).
아브라함이...그 나이 칠십 오 세였더라 - 아브라함의 향년이 일백 칠십 오세였으니(25:7) 이때는 그의 중년기이다. 대개 중년기의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려 하며 변화를 기피하려는 것이 일반적인데, 갈 바를 알지 못하고서도 지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본토 집을 나선 아브람에게서 우리는 진정한 용기와 신앙의 결단력을 보게 된다(마 4:18, 19, 20, 21, 22).
5절 바이카흐 아브람 에트 사라이 이쉐토 베에트 로트 벤 아히브 베에트 콜 레쿠솸 아쎄르 라카슈 베에트 하네페쉬 아쎄르 아슈 베하란 바예체우 랄레케트 아르차 케나안 바야보우 아르차 케나안
성 경: [창12:5]
창12:5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가나안으로 향하는 아브람]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 - 연로한 부친 데라로 말미암아 뜻하지 아니하게 체류하게 되었던(11:31) 하란 거주 생활이 비교적 오래 지속되었음을 나타낸 준다. 한편 당시 아브람과 롯은 유목인이었으니(13:5) 그들의 모슨 소유물은 대부분 가축이었을 것이다(13:2).
얻은 사람들 - 직역하면 '획득한 자들'. 대족장 아브라함 집에 속한 남녀 종들과 그들의 자식을 가리킨다. 일손이 부족한 아브람에게 많은 가축을 돌보기 위해서는 부득이 종들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 본절은 마치 아브람이 목적지를 알고서 길을 떠난 듯이 오해할 수 있는 구절이다. 그러나 이는 11:31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결과 필연적으로 도달할 수밖에 없는 작정된 땅이 바로 가나안임을 일깨워 주는 구절일 뿐이다<1절>.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 하란에서 가나안까지는 약 480Km 정도의 거리인데 당시의 여행으로 미루어 보아 아브람 일행은 유프라테스 강변을 따라 시리아에 도착, 그곳 광야를 횡단하여 다메섹에 이른 후 가나안으로 직진하였을 것이다.
6절 바야아보르 아브람 바아레츠 아드 메콤 쉐켐 아드 엘론 모레 베하케나아니 아즈 바아레츠
성 경: [창12:6]
창12:6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가나안으로 향하는 아브람]
모레 상수리나무(엘론 모레) - '본다'는 뜻을 가지 '라아'로부터 파생된 '모레'는 종교적인 의미에서 '가르치는 자'를 뜻하는데 '예언자'로 번역될 수도 있다. 그리고 '강하다'란 뜻을 가진 '울'로부터 파생된 '엘론'은 상수리나무처럼 재질(才質)이 강하며 병충해도 잘 견디는 나무를 가리킨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 '모레 상수리나무'를 고대 이교도들이 신탁(oracle)을 받을 때 사용하던 '예언자의 나무'로 본다. 그러나 '마므레'와 같이(13:18) '모레'가 단순히 상수리나무 숲의 주인 이름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Alford, Murphy, Kalisch).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 아브람이 세겜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벧엘과 남방으로 옮겨 가게 된 이유 중의 하나이다(8, 9절). '가나안 사람'은 함의 후예(10:6)로 우상숭배 행위에 탐닉하며 배타심이 강하던 족속이었으니 아브람이 그들 가운데서 생활하기란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7절 바예라 아도나이 엘 아브람 바요메르 레자르아카 에텐 에트 하아레츠 하조트 바이벤 솸 미즈베아흐 라아도나이 하니르에 엘라이브
성 경: [창12:7]
창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가나안으로 향하는 아브람]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 '나타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아'는 '증명하다', '보이다'는 뜻으로 아브람에 대한 하나님의 현현(theophany)이 꿈이나 환상이 아닌 눈으로 볼 수 있는 객관적인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증거해 준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므로(요 4:24) 눈에 보이는 것은 온전한 하나님 자체가 아니라 그분의 임재의 상징이거나 표시일 것이다(17:22;18:1, 2;출 3:2). 그러나 이것은 계시를 받는 자가 분명히 인지할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가라사대 - 대개의 경우 하나님의 현현(顯現)에는 선포되는 말씀이 동반된다. 따라서 계시 수납자는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분의 특별 계시를 귀로 들을 수 있다(33:24, 25, 26, 27, 28, 29, 30).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 1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다. 이로써 아브람은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섭리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곳 가나안이 자신의 후손들에게 허락된 '약속의 땅'임을 알게 되었다. 훗날 이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출애굽의 원동력이 되었으며(50:24;출 3:15, 16, 17, 18, 19, 20) 또한 민족적 일체성을 유지하는 근본 동인이 되었다.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제단을 쌓은 자로는 아브람 이전에 이미 노아가 있지만(8:20) 자신에게 현현하신 하나님을 기념하여 제단을 쌓는 자는 아브람이 처음이다. 이로써 아브람은 장차 그의 후손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것에 대하여서도 함께 감사하였을 것인데 참된 신앙은 이처럼 보지 못하고 장래 일에 대하여서도 믿고 감사할 줄 아는 것이다(히 11:1, 13).
8절 바야에테크 미솸 하하라 미케뎀 레베이트엘 바예트 오홀로 베이트엘 미얌 베하아이 미케뎀 바이벤 솸 미즈베아흐 라아도나이 바이크라 베솀 아도나이
성 경: [창12:8]
창12:8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가나안으로 향하는 아브람]
벧엘 - '하나님의 집'이란 뜻. 아브람 당시의 본래 이름은 '루스'였으나 야곱에 의해 벧엘로 바뀌었다(창 28:16, 17, 18, 19). 예루살렘 북방 약 19Km 지점에 위치한 오늘날의 베이틴(Beitin)으로 좋은 샘들이 많아 고대로부터 유목민들의 각광을 받던 곳이다.
아이 - '황폐한 작은 산'이란 뜻. 벧엘 동남쪽 약 3Km 지점에 위치한 가나안의 요새화 된 성읍이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시 아간의 범죄로 일차 정복에 실패한 성읍이 바로 이 아이 성이다(수 7:1-26).
여호와를 위하여... 이름을 부르더니 - 여기서 단을 쌓는 것은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을 뜻하며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찬송과 기도가 있는 공(公) 예배를 드리는 것을 뜻한다 <4:26>. 즉 아브라함은 가나안 입성 후 처음으로 모든 식솔들을 불러 모아 하나님께 대한 공 예배를 드림으로써 자신의 가정에 예배 규례를 확립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아브람은 정처 없이 유리하는 중에서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찬양은 성도가 멈추어서는 안 되는 영적 호흡이다.
9절 바이사 아브람 할로크 베나소아 하네게바
성 경: [창12:9]
창12:9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주제1: [아브람의 소명 및 사래 사건]
주제2: [가나안으로 향하는 아브람]
점점...옮겨 갔더라 - 이러한 이주 원인은 원주민과의 마찰 때문으로 추측되는데(6절) 얼마의 시간 동안에 어느 만큼 이동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가다가 장막을 치고, 다시 출발하곤 하는 일을 되풀이하였을 것이다.
[여호수아 주석성경말씀] 여리고성 정탐과 라합의 붉은 줄(수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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