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8장에서는 북이스라엘과 아람에 대한 멸망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또한 앗수르를 의지하는 남 유다에 대해서 심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이방 나라를 의지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심판할 수밖에 없습니다. 앗수르 민족은 포악한 민족입니다. 이런 민족을 의지하면 결국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의 재력과 권세를 의지하면 안 됩니다. 이것 때문에 마지막은 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따르라(사 8:1-22)
1-10절, 앗수르가 오리라
[1-4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큰 서판을 취하여 . . . .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큰 서판을 취하여 그 위에 통용문자로 마헬살랄하스바스라 쓰라. 내가 진실한 증인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불러 증거하게 하리라.” ‘마헬살랄하스바스’(마헤르 솰랄 카쉬 바즈)라는 원문은 ‘노략이 속히 온다. 그가 약탈을 서둘렀다’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노략이 속히 올 것을 알려주신 것이었다. 또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주신 이 계시는 진실한 증인 우리야와 스가랴를 통해 확증될 것이다. 그들은 진실한 증인이었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가감 없이 그대로 증거하는 자가 진실한 증인이다.
이사야는 자기 아내(한네비아)[여선지자]와 동침했고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았다. 여호와께서는 이사야에게, “그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 이는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할 줄 알기 전에 다메섹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앗수르 왕 앞에 옮긴 바 될 것임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선지자의 아들 이름은 하나님의 계시된 뜻대로 ‘노략이 속히 온다. 그가 약탈을 서둘렀다’는 뜻이었다. 그 아이가 자라서 ‘내 아빠(아비), 내 엄마(임미)’라고 말할 줄 알기 전에, 즉 아마 2-3살이 되기 전에, 앞으로 2-3년 내에, 아람과 이스라엘이 망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아람과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경에 앗수르의 침공으로 멸망하였다.
악한 세상 나라는, 비록 일시적으로 강할지라도, 결국 망하고 만다. 땅에 있던 전제국가들, 백성의 인권을 짓밟고 자유를 빼앗던 그 독재국가들은 다 망하고 말았다. 대 로마 제국도, 군국주의 일본 제국도, 나치 독일도 다 망했다. 불경건하고 부도덕하던 아람과 이스라엘도 그렇게 망할 것이다. 그들은 앗수르의 침공으로 망할 것이다. 그들의 재물과 노략물은 앗수르 왕 앞으로 옮긴 바 될 것이다.
[5-8절] 여호와께서 다시 내게 일러 가라사대 이 백성이 천천히 . . . .
여호와께서는 또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나니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강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곬[수로들과 강들]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하리라.”
유다의 잘못은,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아람 왕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를 기뻐하고 의지한 것이었다. ‘실로아’는 예루살렘 남동쪽에 있는 샘의 이름이다. 그것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날 때부터 소경 된 자를 그리로 보내어 눈을 뜨게 하셨던 그 실로암 못이다(요 9:7).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은 참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킬 것이다. 그것은 야단스럽거나 사람들을 혹하게 하는 달변이 아니고, 조용하고 진실하고 진지한 교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다 백성은 그런 말씀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주위의 나라들의 요란스러운 우상숭배적 행위들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세상적 방식, 육신적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려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먼 곳으로부터 앗수르 사람들을 불러오셔서 유다가 의지하는 아람과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열국을 다스리시는 ‘주’ 하나님, 주님이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악한 세상 나라들을 마침내 멸망시키실 것이다.
앗수르의 침공은 유다 땅에도 큰 타격을 줄 것이다. 앗수르 왕은 “그 모든 곬[수로들, 강들]에 차고 그 모든 언덕에 넘쳐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 하고 목에까지 미칠” 것이다. ‘그 모든 곬과 그 모든 언덕’은 아람과 이스라엘의 골짜기들과 강들과 언덕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앗수르 왕은 아람과 이스라엘을 정복한 후에 유다에까지도 접근해 올 것이다.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하리라.”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범죄 때문에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유다 나라를 ‘임마누엘이여’라고 부른 것은 그 나라가 ‘임마누엘’ 곧 메시아의 땅이며 장차 메시아로 인해 회복될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메시아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이다.
[9-10절] 너희 민족들아, 훤화하라.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 먼 . . . .
이사야는 말한다. “너희 민족들아, 훤화하라[부서지리라](NASB).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 먼 나라 백성들아, 들을지니라. 너희 허리를 동이라.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 허리에 띠를 띠라. 필경 패망하리라. 너희는 함께 도모하라. 필경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내어라.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이니라.”
최종적으로는 앗수르를 포함한 모든 열방들이 다 멸망할 것이다. 지금 아람과 이스라엘이 유다를 침공하고 위협하지만, 그들은 수년 내에 앗수르에게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앗수르는 영원한 나라인가? 아니다. 앗수르도 모든 지혜와 모략으로 계획하며 전쟁을 준비하고 행하지만 결국 망하고 말 것이다. 세상 나라들은 다 멸망할 것이다. 본문은 ‘필경 패망하리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한다. 그들의 계획은 결국 실패할 것이다. ‘필경 이루지 못하리라,’ ‘시행되지 못하리라.’
열국이 패망하고 그들의 계획이 실패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유다와 함께하시기 때문이다. 유다에는 임마누엘의 약속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메시아의 약속이다. 그것은 이사야 7:14에서 임마누엘이라고 불릴 한 아기의 탄생을 예언했을 때 이미 암시되었다. 메시아께서 오셔서 이루실 일 때문에 열국들은 결국 패망하고 유다는 마침내 이길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그는 이사야의 아들 마헬살랄하스바스가 ‘내 아빠, 내 엄마’라고 부를 줄 알기 전에 다메섹과 사마리아, 곧 아람과 이스라엘을 멸망케 하실 것이다. 또 그는 열국들의 멸망을 선언하셨다. 그 예언 속에는 앗수르의 멸망도 포함된다. 하나님께서는 악의 세력들을 다 파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홀로 역사를 주관하시는 섭리자이시다(시 96:10). 세상 나라는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이다.
둘째로, 우리는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로 만족하자. 유다의 문제는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적 사상과 풍조를 배격하고 역사적 기독교, 성경적 기독교로 만족하자. 우리는 성경의 교리적, 윤리적 교훈을 붙들자. 우리는 옛 신앙을 붙들자. 우리는 성경적, 역사적 기독교 신앙으로 만족하며 그 진리, 그 신앙을 굳게 붙들고 지키자.
셋째로, 우리는 임마누엘을 믿자. 하나님께서는 유다까지도 앗수르의 침공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하시면서도 유다 백성을 ‘임마누엘이여’라고 부르셨다. 선지자는 이방 나라들의 패망과 그들의 계획의 실패의 이유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이니라”고 말했다(10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이라는 뜻인 임마누엘은 메시아를 가리켰다(사 7:14).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과 승리는 메시아의 사역에 의존한다. 인생은 다 부족하고 성도도 여전히 죄성을 가지고 있고 실수와 범죄가 없지 않은 존재들이지만, 우리의 의는 메시아의 대속 사역에 있다. 메시아께서는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이시다. “우리의 의는 이것뿐 예수의 피밖에 없다!”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신다(마 28:20). 또 성령께서도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하신다(요 14:16).
11-22절,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11-12절]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내게 알게 하시며 . . . .
이사야는 말한다.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내게 알게 하시며 이 백성의 길로 행치 말 것을 내게 경성시켜 가라사대 이 백성이 맹약한 자가 있다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맹약한 자가 있다 하지 말며 그들의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하나님께서는 강한 손, 즉 강한 감동으로 그의 뜻을 알게 하셨다.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이 강하고 그 영향이 너무 크므로 하나님께서는 강한 감동으로 선지자를 교훈하신다. ‘이 백성’은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를 다 포함한 것 같다. 북방 이스라엘은 배교적이고 남방 유다는 타협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이 백성’의 길로 행치 말라고 교훈하셨다. 그는 이사야에게 백성들의 사고방식으로 생각지 말고 그들의 생활방식으로 살지 말라고 교훈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이 맹약한 자가 있다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맹약한 자가 있다 하지 말며 그들의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라고 말씀하셨다. 12절에 두 번 나오는 ‘맹약한 자’라는 원어(케쉐르)는 ‘공모(共謀), 모반(謀反)’이라는 뜻이다. 12절 후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맹약한 자 혹은 공모(共謀)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이 아람과 동맹하여 유다를 치려 한 것을 가리킨 것 같다. 그 연합군의 침공, 그 공모는 유다에게 매우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에게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일 것이다.
[13-15절]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로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로 너희의 두려워하며 놀랄 자를 삼으라.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하여 거칠 것이며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걸릴 것이며 잡힐 것이니라.”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개인의 생사화복과 국가의 흥망성쇠는 하나님께서 홀로 주장하신다. 그러므로 외형적으로는 아람과 이스라엘의 동맹이 위협적이고 두려운 일이지만, 유다는 그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유다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만 두려워해야 한다. 역사상 경건한 성도들은 다 그러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풀무불과 사자굴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만 두려워하며 의지하고 소망하였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그러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불신앙적 유다 백성에게는 오히려 거치는 돌이 되실 것이다.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당시에 절정적으로 드러났다(벧전 2:8).
[16-18절]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 . . .
이사야는 말한다.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하라. 이제 야곱 집에 대하여 낯을 가리우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싸매며 봉함한다’는 것은 보존한다는 뜻인 동시에 감춘다는 뜻이라고 본다. 그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향해 낯을 가리우시지만, 이사야는 하나님만 바라본다. 그는 세상 풍조와 여론을 역행하며 살아야 했다. 그의 길은 고난의 길이며 외로운 길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종들과 성도들이 가야 할 길이다. 이사야는 또 자기 자녀들이 하나님의 징조와 예표가 되었다고 말한다. 첫아들 ‘스알야숩’은 ‘남은 자들이 돌아온다’는 뜻을 가졌고, 둘째 ‘마헬살랄하스바스’는 ‘노략이 속히 임한다’는 뜻이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그 계시의 말씀을 잘 보존해야 했다. 그 말씀은 유다 백성에게 지침이 되고 소망이 될 것이다.
[19-22절]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 . . .
이사야는 또 말한다. “혹이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주릴 것이라. 그 주릴 때에 번조하여[노하여] 자기의 왕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중으로 쫓겨 들어가리라.”
이사야는 특히 신비주의적 거짓 선지자들에 관해 경계하였다. 그가 사역하던 시대에 유다 사회에는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고 하는 자들 중에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 즉 은사주의적 거짓 선지자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들이 정녕히 아침빛을 보지 못한다’는 원문(아쉐르 에인-로 솨카르)은 ‘그들 속에 빛이 없기 때문이다’는 뜻이다(KJV, NASB). 우리의 신앙생활의 표준은 율법과 증거, 곧 하나님의 말씀, 성경말씀뿐이다. 기적은, 성경의 기록이 완성되기 전에 하나님의 진리를 확증하는 목적으로 어느 기간 동안 주셨던 것이었다.
기독교는 결코 기적을 추구하고 기적을 의존하는 기적주의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사는 종교이다. 기독교인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뜻대로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기를 힘쓰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말씀 중심 곧 성경 중심으로 살지 않는 자는 그 속에 진리의 빛, 곧 참된 지식이 없는 자이다. 거짓된 신비주의에 빠져 거짓된 것을 의지하고 그것들에게 묻는 자들은 결국 방황하고 곤고하고 하나님을 저주하고 환난과 고통의 흑암에 떨어질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하자.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창조자이시며 온 세상을 보존하시고 다스리시는 섭리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생사화복과 국가의 흥망성쇠를 홀로 주관하시며 인류의 역사를 홀로 주관하시는 주권자이시다. 여호와 하나님만 우리의 의지할 자이시며 우리의 참된 피난처이시다. 주 예수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고(마 10:28), 또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고 말씀하셨다(마 24:6).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계신 참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의지하자.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말씀만 붙들자. 성경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기준이다. 우리는 성경적 기독교, 역사적 기독교, 곧 옛신앙을 굳게 붙들자. 특히 오늘날 불건전하고 거짓된 신비주의, 은사주의가 난무하여 성도들을 유혹한다. 기독교는 신비주의나 은사주의가 아니다. 우리는 은사 추구적, 은사 의존적 신앙생활을 하지 말고, 성경말씀의 바른 교리를 믿고 바른 생활교훈을 따라 살자. 그것이 진정한 기독교이다. 오늘 시대는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고 옛 길을 참고하면서 바로 믿고 바로 사는 신앙생활을 하자.
[욥기 10장 주일설교말씀] 욥이 하나님께 탄원함(욥 1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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