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예레미야 강해설교 중에서 유다 백성들의 죄악상과 심판 방법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심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회개를 촉구했지만 유다 백성이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통해서 계속해서 불렀지만 그들은 외면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방 신을 섬긴 유다 백성을 바벨론을 통해서 심판하게 됩니다. 이방 백성을 통해서 예루살렘을 멸망시켜버립니다. 하나님이 배부르게 했더니 주인을 몰라보고 배신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놓고 하나님을 배신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면서도 세상을 의지하고 돈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유다 백성들의 죄악상과 심판 방법(렘 5:1-31)
1-9절, 이스라엘의 패역함
[1-6절]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그들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옛날에 소돔 고모라 성은 의인 열 명이 없어서 유황 불비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였다(창 18:32). 이제 예루살렘 성은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가 한 사람이 없어 멸망할 처지에 있었다. 공의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것이다. 또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진리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진리와 계명을 믿고 그대로 행해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지 못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맹세만 바르게 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표가 될 것이다. 맹세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공의의 심판자 되심을 인정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그들은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행위에까지 거짓됨이 있었다.
예레미야는 말한다. “여호와여, 주의 눈이 성실을 돌아보지[진실을 찾지] 아니하시나이까? 주께서 그들을 치셨을지라도 그들이 아픈 줄을 알지 못하며[괴로워하지 아니하며] 그들을 거의 멸하셨을지라도 그들이 징계를 받지 아니하고[고치기를 거절하였으며] 그 얼굴을 반석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거절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이 무리는 비천하고 우준한 것뿐이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거의 멸하다시피 하였으나 그들은 고치기를 거절하였다. 그들은 그 얼굴을 반석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거절했다. 그들은 죄에 대한 깨달음도, 하나님의 징벌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그들의 마음은 완고하고 완악하고 배교적이었다. 그들은 영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비천하고 미련한 것뿐이었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알지 못하니 내가 귀인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그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여호와의 길,’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정해 놓으신 사람의 정로이다. 그것은 십계명에 요약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귀족들은 하나님의 법을 알았으나 그것이 자신을 속박하는 멍에와 결박이라고 여겼다. 악인들은 성경의 교훈을 속박으로 여긴다. 그러나 실상,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사람을 속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사람의 행복과 영생을 위한 것이다(신 10:12-13).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보온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오리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패역(메슈보스)[배교]이 심함이니이다.” 사자와 이리와 표범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징벌의 한 방법이었다. 그것은 그들을 죽이시는 재앙이었다. 그 형벌의 이유는 그들이 허물이 많고 배교가 심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허물이 많았다. 그것은 한두 번의 실수가 아니었다. 사람이 한두 번 실수를 하여도 하나님께서 징벌하실 것이지만, 그것이 반복된다면, 마침내 최종적인 멸망이 올 수밖에 없다.
[7-9절] 내가 어찌 너를 사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내가 어찌 너를 사하겠느냐? 네 자녀가 나를 버리고 신이 아닌 것들로 맹세하였으며 내가 그들을 배불리 먹인즉 그들이 행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그들은 살찌고 두루 다니는(마쉬킴)[원기왕성한] 수말같이 각기 이웃의 아내를 따라 부르짖는도다.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어찌 이 일들을 인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수(報讐)하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다시 서술하신다. 그들의 대표적인 죄는 우상숭배와 행음함이다. 예레미야 2:13도,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고 말하였다. 이스라엘은 생수의 근원 되는 하나님을 버렸고 스스로 헛된 웅덩이 곧 터진 웅덩이를 팠다. 그들의 우상숭배는 터진 웅덩이같이 결국 헛될 것이다. 성경이 증거하는 내용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것은 과거에 하나님의 말씀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바르게 해석되고 적용되면 현재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딤후 3:16).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죄를 깨닫고 회개하자. 3절, “그 얼굴을 반석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므로.” 5절, “[귀인들도] 일제히 그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 6절, “이는 그들의 허물이 많고 패역[배교함]이 심함이니이다.” 7-8절, “그들이 행음하며 창기의 집에 허다히 모이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떠나고 배교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을 버리고 그의 계명을 버린 죄는 없는가? 하나님의 길과 사람의 정로를 알지 못한 죄는 없는가? 우리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부르지 않은 죄는 없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지 않은 죄는 없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고 붙잡고 사모하지 않은 죄는 없는가? 우리는 헛된 것에 가치를 두고 산 죄는 없는가? 우리는 행음한 죄는 없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징책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부족을 고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완악한 마음과 배교적인 마음으로 행한 죄는 없는가? 이런 죄들이 있다면 다 회개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자. 6절, “그러므로 수풀에서 나오는 사자가 그들을 죽이며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멸하며 표범이 성읍들을 엿보온즉 그리로 나오는 자마다 찢기오리니.” 9절,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어찌 이 일들을 인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악을 반드시 심판하시는 자이시다. 또 하나님의 심판은 참으로 무섭고 두렵다. 하나님께서는 무서운 맹수처럼 회개치 않는 악인들을 죽이시고 멸하실 것이다. 시편 7:11-12,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사람의 정로(正路)로만 가자. 1절,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공의가 무엇이며 진리가 무엇인가? 공의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행하는 것이며, 진리는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4절,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길과 하나님의 법은 곧 성경말씀에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와 교훈이다. 그것이 인생의 정로이다.
사람의 정로(正路)는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을 붙들고 성경말씀대로 행하는 것이다. 즉 성경적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읽기와 성경 배우기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 밝히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감사히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음을 확신해야 한다. 또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사상이나 인격이나 삶 속에 있는 작은 부족이라도 성경에 비추어 고쳐 나가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헛된 것들, 즉 돈이나 세상 명예나 육신의 쾌락 등에 가치를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사람의 정로(正路)로만 살아가야 한다.
10-19절, 하나님의 심판
[10-13절] 너희는 그 성벽에 올라가 훼파하되 다 훼파하지 . . . .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는 그 성벽에 올라가 훼파하되 다 훼파하지 말고 그 가지만 꺾어버리라. 여호와의 것이 아님이니라.” 그는 이방 나라들에게 이스라엘의 성읍을 파괴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다 파괴치 말고 그 가지만 꺾으라고 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회개하지 않고 마침내 멸망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참된 소유, 즉 그의 택하신 자들이 아니었다.
가지만 꺾으라는 말씀은 나무 둥치를 남겨두라는 뜻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파괴하되 완전히 멸절시키지는 않으실 것임을 암시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이다. 본장 18절 하반절에도, “그때에도 내가 너희를 진멸치는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사야 6:13에도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고 말했다.
예레미야는 말한다. “[이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과 유다 족속이 내게 심히 패역하였느니라[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벌하시는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께 심히 패역했기 때문이었다. ‘패역하다’는 원어(바가드)는 ‘배신하다, 변절하다’는 뜻이다(BDB).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대해 매우 배신적이었다.
예레미야는 말한다. “그들이 여호와를 인정치 아니하며 말하기를 여호와는 계신 것이 아닌즉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요 우리가 칼과 기근을 보지 아니할 것이며 선지자들은 바람이라. 말씀이 그들의 속에 있지 아니한즉 그같이 그들이 당하리라 하느니라.” ‘인정하다’는 원어(키케쉬)는 ‘거짓되이 행하다’는 뜻이다(BDB). 이스라엘 백성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선언하신 재앙, 곧 칼과 기근을 무시하였다. 그들은 선지자들을 바람 곧 허무한 존재로 간주했고 그들이 전하는 바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며 그들의 선언하는 재앙이 그들에게 임하라고 저주의 말까지도 하였다. 예레미야 시대의 구약교회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하나님의 바른 말씀과 거짓말이 혼동되고 있었다.
[14-18절]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들이 이 말을 하였은즉 볼지어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 그 불이 그들을 사르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의 말을 무시하고 그들을 저주하기까지 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의 입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불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이 나무가 되어 불타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선지자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대로 불같은 하나님의 진노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보라, 내가 한 나라를 원방에서 너희에게로 오게 하리니 곧 강하고 오랜 나라이라. 그 방언을 네가 알지 못하며 그 말을 네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먼 나라 바벨론의 군대를 불러오게 하실 것이다. 바벨론은 당시에 세계적인 강대국이었다. 그 나라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나라이었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그 전통(箭筒)[화살통]은 열린 묘실이요 그 사람들은 다 용사라. 그들이 네 자녀들의 먹을 추수 곡물과 양식을 먹으며 네 양떼와 소떼를 먹으며 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열매를 먹으며 네가 의뢰하는 견고한 성들을 칼로 파멸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군대로 인해 많이 죽게 될 것이다. 그들의 화살통은 열린 무덤처럼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 것이며,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먹을 양식들, 고기들, 과일들을 빼앗아가고, 유다의 견고한 성들을 파괴시킬 것이다. 그 전쟁은 참혹한 불행이 될 것이다.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때에도 내가 너희를 진멸치는 아니하리라.” 10절에서 ‘가지만 꺾어버리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진노 중에서도 긍휼을 베푸셨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징벌하시지만, 완전히 멸망시키지는 않으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 받은 자들이며 남겨진 자들이다.
[19절] 그들이 만일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그들이 만일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느뇨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너희 땅에서 이방 신들을 섬겼은즉 이와 같이 너희 것이 아닌 땅에서 이방인들을 섬기리라 하라.”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의 멸망의 이유를 말씀하신다. 그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겼기 때문이었다. 우상숭배는 죄악들 중에 가장 큰 죄요 가장 근본적인 죄악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죄는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을 가져온다. 본문은 특히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께 심히 배신적이게, 거짓되이 행하고 우상숭배를 하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무시하고 저주한 죄에 대해 지적하였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것이 가장 큰 죄요 가장 근본적인 죄악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게 될 때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무시하고 멀리하고 떠난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사랑하고 성경을 읽고 성경을 배우기를 힘쓰고 그 모든 말씀을 믿고 그 모든 말씀을 힘써 행하게 된다. 우리는 죄가 불행의 근본 원인임을 알고 죄를 멀리하자.
둘째로,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만 온다. 인류는 다 죄 가운데 빠져 있었다. 하나님께서 긍휼로 조금 남겨두지 않으셨더라면, 모든 인류는 다 멸망했을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 은혜로 일부의 사람들을 택하셨다. 그는 택자들의 죄과 그 형벌을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전가(轉嫁)시키셨고 그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대속(代贖)하게 하셨다. 또 그는 성령으로 그 택자들을 중생시켜 죄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고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셨다. 또 그는 그들을 교훈하시고 단련시키셔서 성화를 이루게 하시고 마침내 영광에 이르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구주이시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과정을 가로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택하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다 구원하시고 마침내 온전케 하신다. 그러므로 주께서는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요 6:38-39).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평생 하나님을 떠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의 원인은 죄이었다. 그들의 죄는 하나님을 저버리고 그의 말씀을 거부한 죄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자. 우리는 성경에 증거된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받고 그 말씀을 붙잡자. 성경말씀을 떠나지 말자.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는 것이 곧 죄이다. 오늘 시대는 영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대이다. 거짓된 교리들과 교훈들이 난무하는 시대이다. 배교와 타협과 혼돈의 시대이다. 이런 때에 우리는 TV나 책들이나 대중매체들을 통해 전달되는 사람들의 말들에 귀를 기울이지 말고 오직 성경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성경에 관한 것보다 성경 자체를 힘써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고 분별하고 믿고 행하자.
20-31절, 이스라엘의 죄악
본문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한다.
[20-25절] 너는 이를 야곱 집에 선포하며 유다에 공포하여 . . . .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를 야곱 집에 선포하며 유다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우준하여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지적하라고 명하신다. 사람의 죄를 지적하는 일은 힘든 일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우준하고 지각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지각이 없다’는 원어(에인 레브)는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바른 마음, 바른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 즉 깨닫는 마음의 눈과 깨닫는 마음의 귀가 없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계한[경계]을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계한[경계]을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흉용하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패역하는(소레르 우모레)[완고하고 반항적인](BDB)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상태를 바다의 모래에 비교하신다. 바닷가에는 보통 해안선을 따라 모래밭이 있어서 아무리 큰 파도가 몰려와도 그것을 넘지 못한다. 물론 지진과 해일이 일어날 때 그것을 일시적으로 넘어올 때가 있으나 그 예외적 현상도 일시적이다. 해일이 지난 후에는 파도가 여전히 모래밭을 넘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넘어갔다. 그들은 완고하고 반항적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고 도리어 대적하였다. 자연은 자연법칙에 순응하지만, 사람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도덕 법칙을 거역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 은택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른 비, 곧 가을에 파종에 꼭 필요한 비를 주시고 늦은 비, 곧 봄에 결실을 위해 꼭 필요한 비를 주셨다. 이런 일들은 자연히 또는 우연히 되는 것이 아니고 또는 자기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허물과 죄가 하나님의 주시는 자연 은택들을 물리쳤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들을 물리치고 막았다.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사 48:22; 57:21). 죄를 짓는 자는 스스로 불행을 가져온다.
[26-29절] 내 백성 너희 중에 악인이 있어서 새 사냥꾼의 . . . .
하나님께서는 또 말씀하신다. “내 백성 너희 중에 악인이 있어서 새 사냥꾼의 매복함같이 지키며 덫을 놓아 사람을 잡으며 조롱에 새들이 가득함같이 너희 집들에 속임이 가득하도다. 그러므로 너희가 창대하고 거부(巨富)가 되어 살찌고 윤택하며 또 행위가 심히 악하여[악인들의 행위들보다 능가하여]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송사 곧 고아의 송사를 공정히 하지 아니하며 빈민의 송사를 공평히 판결치 아니하니 내가 이 일들을 인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 같은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악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새 사냥꾼의 매복함같이 지키며 덫을 놓아 사람을 잡았다. 또 새장에 새들이 가득함같이 그들의 집들에는 속임이 가득하였다. 그들은 창대하고 거부(巨富)가 되어 살찌고 윤택하였다. 그들의 행위는 심히 악하였다. 그들의 행위들은 세상의 악인들의 행위들을 능가하였다. 남방 유다 백성은 멸망이 가까웠을 때에 하나님의 율법을 듣지 않았고 가나안 원주민들보다 더 악을 행하였다(왕하 21:9).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만 구하였다. 그들은 고아의 송사를 공정히 하지 않았고 빈민의 송사를 공평히 판결치 않았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런 상황이었으니,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을 피할 수 있겠는가? “내가 이 일들을 인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 같은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30-31절]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 . . .
예레미야는 또 말한다.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놀랍고 두려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권위]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의 부패는 지도자들이 앞서서 행하였다. 예레미야 6:13-14,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람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대수롭지 않게]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였다. 참된 설교는 사람의 비위를 맞추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신 대로, 성경대로 하는 것이나, 거짓 선지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또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혹은 ‘자기 권위로’ 다스렸다. ‘자기 권위로’라는 말은 ‘성경 교훈의 권위로’라는 말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그들은 성경과 관계없이, 성경 교훈의 권위로가 아니고 순전히 자기 권위로 다스렸다. 또 백성들은 그런 일들을 좋게 여겼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사회는 총체적인 부패와 혼란 속에 빠져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희망이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징벌의 채찍을 드실 것이며 그들은 결국 멸망하고 말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준하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은 우준하고 바른 마음과 생각이 없었다(21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지혜와 깨달음을 얻자. 우리의 영적인 눈과 영적인 귀가 열려야 한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것인가? 말씀과 기도로 또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다. 우리가 성경책을 힘써 읽고 묵상하면, 또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한다면, 우리는 무지하고 미련한 자리에 있지 않고 지혜와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우리는 우준한 자가 되지 말자.
둘째로, 우리는 완고하고 반항적이지 말자. 이스라엘 백성은 완고하고 반항적인 마음이 있었다(23절). 무엇이 완고한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온유하고 겸손하기보다 마음이 교만하고 굳어져서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땅에 속한 이익만 추구하였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거짓된 것을 예언하였고, 제사장들은 자기 권위로 다스렸고,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겼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건과 도덕의 경계선을 지키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교훈하신 대로 경건하게 살고 의와 선을 행하자. 십계명과 신구약 성경은 오늘날 우리에게 생활의 기준이 된다. 하나님의 법을 넘어가는 것이 죄요 죄의 결과는 평강의 상실이다. 죄는 하나님께서 주실 복들을 물리치고 가로막는다. 그러나 의와 순종의 길에는 하나님의 평강과 복이 있다. 우리에게 의와 순종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할 일이다. 우리는 완고하고 반항적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경건하게 살고 의와 선을 행하자.
[신약 히브리어 베드로전서] 예수 그리스도 계시의 복음(벧전 1: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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