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사사 삼손 설교] “삼손의 죽음을 통한 예수그리스도의 성취”(삿16:28-31)

체데크 2020. 7. 24. 0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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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삼손 설교 중에서 삼손의 죽음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성취에서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삼손의 죽음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성취”(삿16:28-31)

 

명제: 삼손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그림자이다.

목적: 삼손의 죽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모든 죄를 가져갔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늘은 삼손의 죽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구약의 모든 말씀은 나를 향한 증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삼손의 이야기를 삼손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정확한 말씀의 의도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삼손의 모든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하고 있고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되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럼 삼손과 예수님이 어떻게 일치가 되는지를 말씀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삼손과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사랑하는 자에게 배신당했습니다.

 

삼손과 예수님의 공통점은 사랑하는 자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삼손은 사랑하는 여인 들릴라에게,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 가룟 유다에게 배신을 당했습니다.

 

삿16:19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들릴라가 삼손에게 계속해서 자신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가 마지막에 머리에 삭도를 대면 힘이 사라진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들릴라는 삼손을 자기의 무릎에 베고 잠들게 한 후에 삼손의 머리털을 잘랐습니다. 삼손은 들릴라를 사랑하였기 때문에 비밀을 모두 가르쳐 주었습니다.

‘일곱 가닥을 밀고’ (גלה갈라 1548 와우접속사. 동사, 피엘, 미완료, 여성, 3인칭, 단수) 깎다, 면도하다, 대머리가 되다, 라는 뜻입니다. 들릴라는 삼손을 잠재워 안심시키고 머리를 깎아서 밀어버렸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요? 구약에서는 대머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삼손을 더 이상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도록 수치를 주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지 못하도록 부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도 완전한 수치를 주었고 머리털이 남지 않도록 밀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피엘 강조 능동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완전한 수치를 주었으며 다시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를 만들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들릴라와 같은 세상의 부정한 여인들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임하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를 믿지 못하게 만들고 율법의 의를 가르쳐서 부정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거짓된 사상이 들어오게 되면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할 수 없게 되고 결국은 타락의 길로 가게 됩니다. 거짓 그리스도를 주장하는 자들의 말을 따르거나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항상 신경 쓰고 사랑했던 사람들이 배신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막14:44-45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 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가라 하였는지라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예수님도 사랑하는 제자 가룟 유다에게 배신을 당하여 팔리게 됩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잡으려고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고 계실 때에 찾아왔습니다. 보통 입을 맞추는 것은 존경의 표시로 하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배신의 표로 예수님께 입을 맞추고 있습니다.

 

‘입을 맞추니’ (נשק나샤크 5401 와우접속사. 동사, 피엘,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입 맞추다, 복종하다, 라는 뜻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 입을 맞추면서 복종의 의미로 했지만 속마음은 배신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로 불러서 사랑해주셨지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고 대제사장들에게 팔아넘겼습니다. 여기에서 가룟 유다가 예수님께 입을 맞추었는데 겉으로는 절대복종하는 것과 같이 또한 주님을 제일 많이 사랑하는 것과 같이 입을 맞추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피엘 강조 능동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겉은 복종하는 의미로 했지만 속에서는 이미 예수님을 팔아넘기려는 속셈이 가득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이 삼손과 예수 그리스도의 공통점입니다. 들릴라는 피엘 강조 능동으로 삼손의 머리를 밀어서 배반했고 가룟 유다는 피엘 강조 능동으로 예수님께 입을 맞춤으로 배반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은 이와 같이 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 주셨는데 이것을 부인하고 배신하여 예수님을 세상의 물질과, 명예와, 권력에 팔아넘겨서는 안 됩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서 들릴라처럼 은을 받고 가룟 유다처럼 은을 받아서 예수님을 팔아넘긴다면 하나님 앞에서 배은망덕한 자이며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지 못한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 삼손은 눈이 빠져 맷돌을 돌리고 예수님은 채찍에 맞고 십자가를 메셨습니다.

삼손은 블레셋 민족들에게 끌려가서 눈이 빠지게 되고 놋줄에 매어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에게 끌려가 옥에 갇히게 되고 채찍의 고난을 받고 십자가를 메게 됩니다.

 

삿16:21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삼손은 눈이 빠져 맷돌을 돌리게 됩니다. 가사에 내려가 놋줄에 매여 옥에서 맷돌을 돌리면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들릴라 때문에 삼손은 눈이 빠지는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의 눈을 빼고’ (נקר나카르 5365 와우접속사. 동사, 피엘, 미완료, 남성, 3인칭, 복수) 찌르다, 파내다, 빼내다, 쑤시다, 라는 뜻입니다. 블레셋 민족의 방백들은 삼손에게 인정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삼손의 힘이 빠졌다는 것을 안 순간, 도구를 가지고 그의 눈을 쑤시고 찔러서 무자비하게 파냈습니다. 이렇게 삼손에게 복수를 한 것입니다. 삼손이 다시는 앞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빼내버렸습니다. 그 이유가 피엘 강조 능동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손에게 지금까지 당했던 것을 복수함으로 블레셋 민족들은 통쾌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삼손에게 맷돌을 돌리게 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떠나게 되면 사탄과 같은 존재들에게 나의 눈이 빠져 영적인 감각을 잃어버리게 되고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는 자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들릴라와 같은 세상의 쾌락을 좋아하니 결국은 블레셋과 같은 복음이 없는 자들에게 눈이 빠져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19:17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예수님께서도 삼손처럼 고통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며 침 뱉음을 당하여 수치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려고 넘겨졌습니다. 삼손은 맷돌을 돌리게 되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메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의 부정한 곳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נשא나사 5375 와우접속사. 동사, 칼,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메다, 이끌어가다, 형벌 받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십자가를 메시고 골고다로 향했습니다. 이렇게 십자가를 메신 것은 선택받은 자들을 위해서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유대인과 로마인들은 예수님께 십자가를 메게 하셔서 골고다까지 이끌어가게 하신 것은 형벌을 받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 모든 형벌은 바로 선택받은 자들을 위해서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로 올라가신 것을 보고 나를 위한 고통이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골고다로 십자가를 메고 올라가는 것이 얼마나 고통이 있었는지를 깨닫기 위해서는 삼손이 옥에서 놋줄에 묶여 연자 맷돌을 돌리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됩니다. 엄청난 무게의 연자 맷돌을 혼자 스스로 돌리는 고통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로 올라가는 고통입니다.

 

셋째, 삼손은 두 기둥 사이에 세워졌고 예수님은 두 강도 사이에 세워졌습니다.

 

블레셋 민족들이 삼손을 조롱하기 위해서 다곤에게 큰 축제의 제사를 드릴 때에 삼손을 옥에서 불러내어 다곤 신 앞에서 조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날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제사에서 유대인들이 조롱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삿16:25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더니

 

블레셋 민족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삼손을 불러서 자신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래서 삼손을 옥에서 불러서 재주를 부리게 합니다. 그러고 나서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습니다.

 

‘삼손이 재주를 부리니라’ (צחק차하크 6711 와우접속사. 동사, 피엘,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희롱하다, 조롱하다, 비웃다, 라는 뜻입니다. 블레셋 민족들은 눈이 빠진 삼손을 보고 비웃으면서 조롱하고 있습니다. 눈이 먼 삼손아! 전처럼 우리들에게 힘을 한 번 써봐라! 나귀 턱뼈로 우리들을 죽인 것처럼 한 번 죽여 봐라!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구나! 너 하나도 구원 못하는 주제가 누구를 구원한다고 하느냐! 라면서 희롱하고 있습니다. 이런 희롱은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파서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 이유가 피엘 강조 능동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참 동안 삼손을 조롱한 후에 두 기둥 사이에 삼손을 세웠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조롱받으시고 비웃음을 당하셨습니다.

 

마27:41-42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희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남은 구원했지만 자신은 구원할 수 없다고 조롱합니다. 그러면서 비웃음으로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말하면서 네가 만약에 십자가에서 내려온다면 우리가 믿겠다고 희롱하고 있습니다. 삼손이 블레셋 민족들에게 희롱당한 것처럼 예수님도 유대인들에게 조롱당하셨습니다.

 

막15:27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블레셋 민족들이 삼손을 기둥 사이에 세운 것처럼 예수님은 골고다에서 두 명의 강도 사이에 세워졌습니다.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운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십자가에서 두 강도를 오른쪽과 왼쪽에 세움으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삼손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골고다에서 두 강도 사이에 세우신 것은 한 명은 선택받은 자로서 구원을 받고 한 명은 선택받지 못한 자로서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을 가르쳐 주시려고 한 것입니다.

 

넷째, 삼손의 부르짖음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부르짖음을 말합니다.

 

삼손은 두 기둥 사이에 묶여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절규의 부르짖음을 말합니다.

 

삿16: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삼손이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자신을 생각하셔서 이번만 나에게 강한 힘을 주셔서 자신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해달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절규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힘을 한 번만 달라고 합니다. 삼손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모르는 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마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예수님께서도 마지막으로 삼손처럼 하나님께 소리를 치고 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시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라고 소리 높여 절규하고 있습니다. 삼손도 하나님께 마지막으로 힘을 달라고 외치고 있고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절규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이 모든 절규는 선택받은 자를 구원하기 위한 절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마지막 하나님께 호소하시고 죽으셨습니다.

 

다섯째, 삼손과 예수님은 무덤이 이미 준비되어 있습니다.

 

삼손이 죽고 난 후에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가족이 삼손의 시체를 가지고 와서 장례를 치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빌라도에게 달라고 하여 장례를 지내게 됩니다.

 

삿16:31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의 시체를 가지고 올라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삼손이 죽은 후에 시체를 가지고 와서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했습니다. 삼손은 이스라엘 사사로 20년을 치리 했습니다.

‘마노아’ (מנוח마노아흐 4495) 마노아이며 이 단어는 (נוח누아흐 5117) 평안함을 얻다, 예정하다, 안식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삼손이 마노아가 준비한 장지에 들어가게 된 것은 하나님이 예정하신 대로 이루어진 일이며 삼손은 영원한 안식을 얻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영원한 안식을 얻은 것의 예표입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삼손의 무덤을 준비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무덤을 준비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입니다.

 

막15:46-47 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막달라 마리아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고 나서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산헤드린 공회원이며 존경받는 자입니다. 이런 자가 예수님의 시체를 세마포로 싸고 자신이 새롭게 만든 무덤에 넣어서 장례를 치르고 있습니다. 이곳에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덤에서 삼일 동안 계시고 성부 하나님께서 부활시켜 주셔서 잠자는 자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영화의 몸으로 부활하셔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자의 첫 열매가 된 것입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죽음에서 부활하여 영원한 안식을 얻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삼손의 일대기와 마지막 죽음에 이르면서 장례를 치른 후에 무덤에 들어가기까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구약의 모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구약을 읽으면서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영적인 눈이 멀어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입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삼손을 통해서 깨닫게 되고 신약에서 예수님을 통해서 성취가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건입니다.

 

이제 우리가 구약의 인물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어야 합니다. 삼손의 죽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원죄를 뒤집어쓰시고 죽으셔서 나를 살려주셨습니다. 삼손은 사역했을 때에 블레셋 민족을 죽인 것보다 죽을 때에 단 한 번의 사역으로 죽인 자가 더 많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단 한 번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어주시고 선택받은 자들을 모두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제부터 나의 모든 원죄를 가져가시고 블레셋과 같은 사탄의 존재들을 모두 섬멸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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