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베드로전서 4장 설교말씀] 그리스도인다운 생활(벧전 4:1-19)

체데크 2022. 4. 25.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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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4장에서 베드로 사도는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어떻게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말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돈을 사랑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다운 생활(벧전 4:1-19)

 

1-6,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

[1-2]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무장하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성도를 가리켰다고 본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죄 때문에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기 때문에(3:18) 우리도 같은 마음과 생각으로 무장해야 한다. 즉 우리도 죄에 대해 죽은 자로 여겨야 한다. 로마서 6:6-7,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대속의 고난을 받으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는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하심이었다. 사람의 욕심은 죄를 만드는 원인자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는 사람의 욕심을 따라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고 선한 생활을 해야 한다. 에베소서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갈라디아서 5:16-17,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로마서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할 이유는 이방인의 뜻을 좇아 죄악된 생활을 한 것이 지나간 때로 족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의 삶에 이끌리고 거기에 빠져 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는 지난날의 죄악된 삶으로 족하다. 그 죄악된 삶도 부끄러운 것뿐이다. 구원받은 성도는 더 이상 죄 가운데 살지 말고 죄의 낙을 누리며 살지 말아야 한다. 더 이상 죄악된 일에 기웃거리지도 말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경고하기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고 하였다(8:13). 성도에게도 죄의 충동은 있으나 성도는 더 이상 죄에 빠져서는 안 된다. 지나간 때가 족하다!

[4-5]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성도가 세상 친구들과 같이 극한 방탕의 생활을 하지 않으면 그들은 그를 이상히 여기며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 친구들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예수님은 마지막 날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심판주이시다. 디모데후서 4:1-2,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의인들과 악인들은 마지막 날에 다 부활하여(5:29; 24:15)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자기들의 죄들을 다 직접 고백하게 될 것이다.

[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사람들을 따라, 사람들이 받는 것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하나님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니라.” 사람은 육신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장차 죽은 자들이 다 부활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된다. 현재 죽은 자들에게도 그들이 살아 있었을 때 복음이 전파되었다. 비록 그들이 죽었지만 그들 중 어떤 이들은 그 영이 영생의 생명이므로 살아 있다. 육체로는 사람들이 받는 것처럼 심판을 받아 죽었지만, 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죄에 대해 죽은 줄 알고 죄를 멀리해야 하며 더 이상 범죄치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죄악된 삶이 지나간 때로 족한 줄 알고 우리의 남은 날들을 사람의 정욕을 따라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 또 우리는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며 두려워해야 한다.

7-11, 근신, 사랑, 대접, 봉사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 . . .

베드로는 말한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이 세상의 만물은 시작과 끝이 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때가 시작이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때가 끝이다. 성경의 문자적 연대 계산에 의하면, 신약시대는 하나님께서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지 4천년이 지난 때에 시작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세상의 종말에 대해 말하였다. 고린도전서 10: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요한일서 2: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신약시대는 종말의식을 가지고 살 시대이다.

이 세상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기 때문에 성도는 하나님의 뜻에 합한 생활을 힘써야 한다. 본문은 그런 삶을 서너 가지로 증거한다.

첫째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한다. 그것은 세상의 일과 쾌락에 빠져 있거나 술취하고 방탕하지 말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깨어 기도하기를 힘쓰는 것을 말한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은혜의 일들에 대해 그에게 감사하며 우리의 부족과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더욱 이해하고 그 뜻을 행할 힘을 간구하여 얻는다.

[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둘째로, 우리는 열심으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 베드로전서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이것은 예수께서 주신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순종하는 일이다. 사랑은 모든 율법의 완성이다(13:10). 또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10:12). 주께서도 새 계명을 주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심으로 서로 용서하는 본을 친히 보여주셨다. 사도 바울도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견딘다고 말했다(고전 13:7).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오래 참고 용서하며 사는 것이다.

[9-10]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셋째로, 우리는 서로 원망 없이 대접해야 한다. 대접하는 것은 서로를 마음으로나 말로 너그럽게 대하며 상대방이 아프거나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방문하고 물질로 돕는 것이다. 성도가 서로 대접하는 것은 받을 것을 예상하고 베푸는 것이 아니고 그냥 베푸는 것이다. 계산적이지 않게 대접하는 자는 상대방이 자신을 위하지 않을 때라도 속상해 하지 않고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받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재능과 건강과 재물을 주셨다. 우리가 처한 가정 환경이나 사회 환경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이다. 이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을 우리의 것인 양 우리 마음대로 쓰지 말고, 하나님의 것들을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영광과 서로의 유익과 교회 전체의 유익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유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우리는 기꺼이 드리는 심정으로 서로 봉사해야 할 것이다.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말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주신 말씀으로 말하는 것처럼 하고 봉사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주신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께서 범사에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 영광과 권능은 우리에게 있지 않고 오직 영원히 하나님께만 있다.

7절부터 11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베드로는 성도들이 세상의 종말이 가까움을 느끼면서 힘써야 할 일에 대해 몇 가지로 교훈했다.

첫째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이 세상의 일들과 육신의 쾌락에 너무 빠지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세월을 아껴야 한다. 우리는 기도하는 경건한 생활을 힘쓰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더욱 깨닫고 그 뜻을 힘써 행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열심으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주의 사랑을 본받아 거룩하고 깨끗한 사랑으로 열심으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 우리는 사랑함으로써 상대의 부족과 연약을 용서해야 하고, 우리의 사랑이 식어지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원망 없이 서로 대접해야 한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무엇을 받을 것을 생각하지 말고 그냥 베푸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마음으로, 말로, 시간으로, 물질로 서로를 향해 너그럽게 대하기를 힘써야 한다. 또 우리는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받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가진 재능과 지식, 건강과 시간, 물질을 가지고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섬겨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

12-19, 성도의 고난

[12-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 . . .

베드로는 말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성도들에게는 시련하는 고난들이 있다. 그것들은 마치 금광석을 제련하는 용광로의 불과 같은 고통스런 시련들이다. 용광로에 넣어진 금광석에서 불순물들이 제거되고 마침내 순금이 나오듯이, 성도들이 당하는 불시험들은 성도들의 죄악성과 죄악된 습관과 불성실하고 게으른 연약성을 제거하고 더욱 경건하고 거룩하며 충성되고 의롭고 선하고 온유 겸손하고 진실한 인격이 되게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불시험을 당할 때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성도가 고난을 당하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다. 시편 34: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요한복음 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사도행전 14:22,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성도에게 닥친 고난이 자신의 잘못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이든지, 아니면 순수한 시련의 고난이든지 간에, 성도가 당하는 고난은 이상한 일이 아니고 정상적인 일이다.

성도의 고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고난은 2천년 전 십자가 위에서 이미 완성되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고난들은 성도에게 남아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무 죄가 없으셨고 의로우셨으나 우리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다. 이와 같이 성도도 의롭고 선하게 살지라도 이것과 비슷한 고난을 당한다. 마태복음 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골로새서 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물론, 고난은 우리의 죄성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성도는 의의 고난을 당할 때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며 그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인 줄 알고 즐거워해야 한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실 때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지나가고 있다. 기쁨도 슬픔도 지나간다. 그러나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는 영원한 기쁨과 영원한 슬픔이 나뉘게 될 것이다. 그 날에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자들이 참된 기쁨과 즐거움을 소유한 자들이다. 성도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날에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현실의 고난을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그는 그들에게 비난을 받으셨으나 너희에게는 영광을 받으셨느니라.]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들이다. 베드로는 그 이유로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영 곧 성령께서 그들 위에 계심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임이 확인된 자들이다. 세상 사람들은 성도를 핍박하고 욕할 때 그들 위에 계신 성령도 비난하고 욕한 것이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과 성령님을 믿고 의지하고 섬기며 그에게 영광돌렸다. 성도는 확실히 하나님의 사랑받는 백성이 되었다.

[15-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이 일로](전통사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성도는 자기 잘못 때문에 고난을 당해서는 안 되며 살인하거나 도적질하거나 악을 행하거나 남의 일의 참견하다가 고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성도가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당할 때는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17-18]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하나님의 집 곧 교회 안에서 심판이 시작된다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교회 안에 섞여 있는 가라지와 염소 같은 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일 것이다. 성도에게는 단지 하나님의 징계나 단련이 있을 뿐이다(12:8). 그러나 현재 성도들에게 엄한 징계나 단련이 있다면,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마지막 날에 내려질 심판은 얼마나 더 엄중하겠는가? 성도들은 현재 하나님의 징계의 고난을 체험함으로 오히려 장차 하나님의 진노와 정죄로부터 자유를 얻지만, 악인들은 현재 평안할지라도 장차 영원한 형벌의 멸망을 얻을 것이니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모른다! 또한 의인들이 고난 중에 겨우 구원을 얻는다면, 경건치 않은 죄인들은 마지막 심판 때에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설 수 있겠는가?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 . . .

베드로는 또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하나님의 뜻대로 받는 고난이란 앞에서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12),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13),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는 것’(14),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는 것’(16) 등으로 표현되었다. 성도의 고난은 아무리 불같은 시험일지라도 성도를 단련시키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받는 고난이다. 3:17,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고난 중에서 성도가 취해야 할 또 하나의 태도는, 끝까지 선을 행하는 자로서 처신하면서 자신의 영혼을 신실하신 조물주께 부탁하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약속에 신실하시고 전능하신 주권자이시므로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예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 큰 소리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다(누가복음 23:46).

성도들에게는 고난이 있다. 그것은 원광을 용광로에서 제련하듯이 그들을 시련하는 것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는다. 그러나 선을 행하면서 고난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는 그런 유의 고난을 당할 때 이상히 여기지 말자.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은 남아 있는 죄악된 성질과 습관과 연약성을 제거하여 좋은 인격을 만드는 단련의 과정이다. 또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의미가 있다. 특히, 성도들이 믿음 때문에 당하거나 의롭고 선하게 살면서 당하는 고난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다.

성도들은 고난을 당할 때 우선 그 고난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고난을 통해 순금과 같이 신앙 인격의 단련을 받기 때문이다. 또 성도들은 그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또 그들은 고난 중에도 끝까지 선하게 살면서 자기 영혼을 신실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의탁해야 한다.

[이사야 22장 성경 좋은 말씀]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사 2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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