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로마서 5장 설교말씀 중에서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는 말씀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롬 5:12-14)
♠명제 : 첫 아담은 후 아담으로 오실 자의 모형이다.
♠목적 : 첫 아담은 사망을 가져왔고 후 아담은 생명을 가져왔다.
로마서는 복음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바울은 구약의 율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발견했습니다. 구약의 말씀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들도 구약을 읽을 때 율법의 수건이 벗어져야 합니다. 눈에 수건이 있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율법의 수건을 벗겨주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수건을 벗겨주시니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후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흙으로 빚어 만드셨습니다. 에덴동산에 인간을 이끄시고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인생을 살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최초의 율법을 에덴동산에서 주셨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따먹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이 계명을 지키면 생명이 있고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죽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초의 인간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그 결과 죽게 되었습니다. 아담뿐만 아니라 모든 후손들이 아담 때문에 죽게 되었습니다. 결국 나도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에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아담이 오실 자의 모형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를 말씀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첫 아담과 후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을 통해서 알아야 합니다. 또한 오실 자의 모형이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깨달아 내가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롬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 아담으로 인해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이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습니다. 첫 아담의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었으므로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이유가 나는 첫 아담이 따먹은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먹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자신은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조상인 아담이 따먹었기 때문에 모든 후손들도 죽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들어오고’ εισερχομαι(에이셀코마이 1525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단수, 3인칭) 들어오다, 들어가다, 라는 뜻입니다. 에덴동산에 있었던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먹음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대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담 때문에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고 확실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직설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죄가 지금 세상에 들어왔다면 현재 시제를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과거 시제를 쓰고 있다는 것은 첫 아담으로부터 죄가 시작되어 세상에 들어왔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지금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에덴동산에 있었던 첫 아담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에덴동산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먹지 않았어도 이미 나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죄를 지었으므로’ άμαρτανω(하마르타노 264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복수, 3인칭) 죄를 짓다, 빗 맞추다, 실수하다, 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지키지 못하고 실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과녁에 정확하게 화살이 꽂히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지켜서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먹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율법입니다. 율법의 개념은 화살이 과녁에 정확하게 맞아서 꽂히는 것을 말합니다. 죄의 개념은 과녁에서 화살이 빗나가서 맞추지 못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후손들이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었다고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직설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에덴동산에 있었던 아담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의 후손들도 함께 죄를 지었다는 의미입니다. 만약에 내가 죄를 지어 죄인이 되었다면 현재 시제를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나도 함께 죄를 지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결국 나는 아담이 죄를 지었던 그 죄를 함께 지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르렀느니라’ διερχομαι(디엘코마이 1330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단수, 3인칭) ~을 통하여 가다, 통과하다, 라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사망은 첫 아담을 통과하여 나온 모든 자들은 죄인이 되어 사망이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죄를 원죄라고 합니다. 사망이 나에게 임한 사실이 실제로 있습니다. 직설법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라고 우겨도 아담을 통하여 내가 이 세상에 왔기 때문에 죄인이 확실하다는 의미입니다. 만약에 내가 죄를 지어서 사망이 온 것이라면 현재 시제를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망이 온 것은 지금 현재 나에게 온 것이 아니라 첫 아담이 죽었을 때 함께 나도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엡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우리는 이미 허물과 죄로 죽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나를 살려주셨습니다. 아담 이후로 허물과 죄로 죽지 않은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습니다. 이런 나를 살려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롬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지만 율법이 없었을 때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정식으로 율법을 주신 때는 시내 산 계약입니다.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확정했습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없으니 죄를 지어도 죄로 여길 수 없습니다. 정확한 법령이 없기 때문입니다. ‘죄가 있었으나’ ειμι(에이미 1510 동사, 직설법, 미완료, 능동태, 단수, 3인칭) 있다, 이다, 라는 뜻입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는 세상에 있었습니다. 인간은 아담 이후로 죄인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은 죄의 습성이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됩니다. 하지만 정확한 율법의 계명이 없었기 때문에 죄로 여기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것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처음으로 주신 계명은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이 계명을 어기고 만약에 따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했습니다. 이 계명이 떨어지기 전에는 따먹어도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계명의 말씀을 주시고 따먹으면 그때부터 죄가 되어 죽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들도 세상 법에 없는 죄를 지으면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법으로 처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법을 만들어 통과시키고 난 후에 같은 죄를 지으면 그때는 법이 있기 때문에 처벌받게 됩니다. 이와 같은 이치라고 보면 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율법의 계명이 세워졌기 때문에 율법대로 살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율법은 심판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사랑으로 덮어주지만 율법은 정죄입니다. 인간이 율법을 준수할 수 없어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서 못 박아 죽이셨습니다.
롬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내가 아무리 아담의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해도 하나님은 너도 아담과 같은 죄를 지었다고 말씀합니다. 아담부터 모세까지 말씀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담은 첫 계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아담이 첫 계명을 준수하지 않아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모세는 마지막 율법을 시내 산에서 받은 사람입니다. 모세도 아담이 지은 범죄에 동참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율법을 받은 모세도 하나님 앞에서는 원죄의 죄인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고 말씀합니다. 첫 아담은 첫 계명을 준수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후 아담은 모든 율법의 계명을 준수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죄를 짓지’ άμαρτανω(하마르타노 264 동사, 분사, 과거, 능동태, 목적격, 남성, 복수) 죄를 짓다, 실수하다, 실패하다, 라는 뜻입니다. 아담부터 모세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에덴동산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 사람들도 아담과 같은 죄로 인하여 인생이 실패되고 죄를 짓고 사망이 왕 노릇하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과거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들도 아담의 죄에 동참하게 되어 사망이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람들이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망이 왕 노릇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아담의 영향을 받아 똑같은 죄를 지으면서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결국 사망이 왕 노릇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들도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않았다고 우겨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미 과거에 나도 아담이 지은 죄 때문에 사망이 왕 노릇하는 역사가 나에게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빨리 인정하고 후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야 합니다.
‘왕 노릇하였나니’ βασιλευω(바실류오 936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단수, 3인칭) 통치하다, 다스리다, 왕의 권력을 행사하다, 라는 뜻입니다. 첫 아담의 죄 때문에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왕 노릇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사탄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사탄은 사망을 가지고 왕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사망이 들어오게 된 것은 죄 때문입니다. 아담이 죄를 지은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따먹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그 이유가 직설법과 과거 시제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사망이 왕 노릇하는 것은 현재 시제를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에 이미 아담이 지은 죄 때문에 현재 나에게도 동일하게 사망이 왕 노릇하는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면 계속해서 사망이 왕 노릇하게 됩니다. 첫 아담 때문에 나에게 사망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후 아담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실’ μελλω(멜로 3195 동사, 분사, 현재, 능동태, 소유격, 남성, 단수) 곧 ~하려고 하다, ~할 작정이다, ~해야 한다, 라는 뜻입니다.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죄를 지을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려고 작정하셨습니다. 이 일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택받은 모든 자들이 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야차르’의 모습으로 이 땅에 곧 보내시려고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흙으로 빚은 인간의 죄를 흙으로 빚은 인간의 모습으로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대속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오실 분이라면 미래 시제를 사용해야 하는데 현재 시제를 쓰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담의 모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동일하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아담의 죄를 짓고 죽은 자들은 지금 현재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아담의 모형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을 소유하고 있을까요? 첫 아담이 실패했던 율법을 완성하고 완전케 하는 하나님의 뜻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온전한 율법을 모두 지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도 거역하신 일이 없습니다. 끝까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복종하셨습니다. 첫 아담은 죽음을 가져왔지만 후 아담은 생명을 가지고 왔습니다.
‘모형이라’ τυπος(튀포스 5179) 자국, 흔적, 맞은 자리,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τυπτω(튑토 5180) 때리다, 치다, 상하게 하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아담이 오실 자의 모형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도 흙으로 빚은 원죄가 없는 모형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몸의 양 손과, 양 발에 30Cm의 대 못을 박아 자국을 냈습니다. 온몸에는 채찍 자국이 있었으며 밤새도록 고문을 당하시고 맞아서 몸이 상하게 되었습니다.
요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다른 제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여기에 도마는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고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자국을’이라는 단어가 τυπος(튀포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몸에도 고난당하신 자국과 흔적이 있었습니다. 형상이라는 단어가 신약 히브리어에는 דמות(데무트 1823) 닮음, 같은 것, 이라는 뜻입니다.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고 했는데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닮아야 합니다.
창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는데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모양대로’라는 단어가 דמות(데무트)입니다. 후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자로 오셨습니다. 첫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깨지게 만든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무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자신의 몸에 죄악의 흔적을 남기고 선택받은 자들을 살려주셨습니다. 우리가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면서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첫 아담은 죄로 인하여 죽었습니다. 아담 이후에 모든 사람은 원죄에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선택받은 나를 살리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아담의 모형대로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아무 죄가 없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나의 모든 원죄와 자 범죄를 예수님께 담당하게 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 시인하여 고백하고 믿지 않으면 구원이 없습니다. 아담의 죄가 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주님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무엘하 10장 주석 성경말씀] 암몬과 아람 연합군 격퇴(삼하 1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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