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요한계시록 11장 설교말씀] 십자가에 못 박힌 곳(계 11:7-14)

체데크 2020. 10. 1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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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계시록 11장 설교말씀 중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곳이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곳”(계 11:7-14)

 

명제: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는 것이다.

목적: 나는 복음을 전파하다 주님과 죽을 각오가 되어야 한다.

두 증인의 사명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복음을 가진 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복음을 전할 때에 고난과 핍박도 함께 겸하여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 하나님께서 권능도 주셔서 말씀을 전파하지만 사탄들의 방해도 심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11:7)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교회와 주의 종들이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짐승이 올라와 증인들과 싸워 이기고 죽이는 일들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은 누구입니까? 이 짐승들은 다섯째 나팔 재앙에서 나온 짐승들을 말합니다. 바로 이단의 세력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복음을 가진 자들을 죽이고 교회를 핍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올라오는’ αναβαινω(아나바이노 305) 올라오다, 널리 퍼지다, 일어나다, 라는 뜻입니다. 이단의 세력들은 때가 되매 준비하여 세상으로 올라오는 것을 말합니다. 이단이 가지고 있는 비 복음을 널리 퍼트리기 위해서 올라오는 것입니다. 현재형을 쓰고 있음으로 이 시대에도 이단의 세력들이 일어나 많은 교회와 복음을 가진 자들을 죽이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비진리의 말씀을 전하여 교회를 핍박하고 죽여 영혼을 죽이게 됩니다.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스스로 주인이 되어 사탄의 앞잡이로 쓰임 받게 되며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개인적으로 비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핍박하고 죽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시대가 있었습니다. 중세시대에 복음을 전하던 많은 기독교인들이 가톨릭에 의해 목숨을 버려야 하는 상황이 온 것입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순교당하게 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바로 이단의 세력에 의해 복음을 가진 자들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교황의 권한으로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율법을 강조하여 많은 영혼을 죽이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의 사명은 교회를 박해하고 죽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럼 우리는 이런 상황에 어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까? 복음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피 값으로 사신 구원을 기억하고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11:8)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증인들이 짐승들과 싸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 시체들이 큰 성 길에 그대로 있다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소돔이라고 하고 애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어떤 곳입니까? 소돔은 타락이 극에 달했던 도시입니다. 애굽은 우상이 넘쳐나던 나라입니다. 이런 부정한 곳에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죽음으로 비참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단의 세력에 의해 육으로 죽어 수치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가진 자들은 세상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게 됩니다. 빛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어둠의 세력에 의해 공격당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5:8-9)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구원받은 자녀들이 빛의 자녀가 되어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살려고 하면 반드시 핍박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행동으로 예수님을 전하면 어둠의 세력들은 달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다가 죽은 자들이 이단의 세력에 의해 수치를 당하게 되고 부정한 곳에 시체로 버려짐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곳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σταυροω(스타우로오 4717) 십자가에 못 박다, 십자가에 못 박히다, 라는 뜻입니다. 복음을 증거 하다 죽은 자들이 있는 곳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곳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부정한 곳입니다. 로마시대에 죄인들을 죽였던 장소입니다. 주님을 로마 병사들이 죽이고 수치를 주었던 장소에 바로 내가 죽는 것입니다. 복음을 가진 자들이 이곳에서 죽음으로 이방인들에게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사건이 실제적으로 있었으며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미 작정하셔서 준비하셨고 주님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며 많은 선택된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1: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다 죽은 자들을 사흘 반 동안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합니다. 사탄의 능력을 받은 짐승들과 같은 이단의 세력들이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여 죽이고 장사하지도 않습니다. 사흘 반 동안이라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이 기간에 많은 핍박과 고통을 받고 죽는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에 무덤에 장사하지 않는다는 것은 수치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바로 무덤에 장사 지내주었습니다. 만약에 그 날에 장사를 지내지 않으면 땅을 부정하게 만든다고 생각했고 죽은 자에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이나 장사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은 죽어서까지 고통을 주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주받은 자가 땅에 묻히지 못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했던 자들을 철저하게 죽이고 있는 모습입니다.

(11: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함으로 땅에 사는 자들이 증인들이 죽은 것을 즐거워하고 기뻐했습니다. 왜 이렇게 기뻐했을까요? 복음을 전할 때에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저주가 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통해서 구원의 길에 들어서는 것인데 선택되지 못한 자들은 복음을 들을 때에 귀를 막고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 구원을 얻으려는 자들은 자신의 행위가 드러나야 하는데 복음은 철저하게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때문에 듣기가 싫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할 때에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복음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듣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계속 전하면 짜증을 내게 되는 것입니다. 선택된 백성들에게는 기쁨과 즐거움이 되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괴로운 것입니다. 그럼 이 사람들이 증인이 죽었을 때에 왜 기쁘고 즐거워하면서 예물을 보냈을까요? 고대 근동지역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에 축제를 열고 서로 예물을 교환하여 기쁨을 나누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들을 경배하던 자들이 복음을 가진 교회와 성도들이 죽음으로 인해 기뻐서 서로 예물을 주고받은 것입니다. 이들은 복음을 가진 자들이 죽기를 간절히 바랬던 자들입니다. 교회가 욕을 먹고 목사가 타락하면 세상의 사람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라 더 신나서 기뻐합니다. 이들은 짐승을 경배하는 자들입니다. 바로 구원받지 못한 백성들을 말합니다.

(11:11)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그런데 죽었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삼일 반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들어갑니다. 복음을 전하는 기간 동안 핍박받아 죽었던 자들이 하나님께서 부활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 ζωη(조에 2222) 생명, 이라는 뜻입니다. 죽었던 증인에게 영적 생명이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기’ πνευμα(프뉴마 4151) 바람, 호흡, 영, 성령, 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인해 영적 생명을 불어넣어 부활시킨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죽음으로 끝이 나는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다시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구경하는’ θεωρεω(데오레오 2334) 응시하다, 지켜보다, 관찰하다, 라는 뜻입니다. 증인들이 살아나는 것을 보고 짐승에게 경배하던 자들이 놀라 두려워 떨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활케 하신 모습을 본 것입니다. 짐승을 경배하던 자들은 증인들이 살아나는 그때에 관찰하며 응시하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 당장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죽었던 자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치 주님께서 부활하신 모습을 보고 놀란 것처럼 이들도 놀라고 있습니다. 나도 반드시 부활의 역사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영화의 몸으로 부활하신 것처럼 나도 영원한 영화의 몸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소망이 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죽었던 증인들이 살아났던 시대가 있습니다. 가톨릭에 의해 교회가 죽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종교개혁이라는 복음의 바람을 일으켜 새롭게 교회와 성도들을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다시 전파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시대에 내가 부름을 받은 것은 죽었던 증인의 삶을 살아가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복음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복음의 나타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학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희석되어 가는 이때에 주님의 증인들은 다시 살아나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11: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들리면서 올라오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복음을 전파하다 죽었던 자들이 부활하여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데 짐승에게 절하며 경배했던 구원받지 못한 백성들이 구경하고 있습니다. ‘올라가니’ αναβαινω(아나바이노 305) 올라가다, 오르다, 라는 뜻입니다. 구름을 타고 올라가는데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때 사용했습니다. 부활한 구원받은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중에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사실이 실제적으로 있었으며 반드시 일어날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가는 자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준비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여 구원을 받고 자신 스스로 구름을 타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이유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고통을 당하여 죽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나를 반드시 부활시켜 하늘나라로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수들은 의로운 자들이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지막 날에 나를 데리러 온다고 했습니다. 그때에 선택받은 자들은 구원을 얻어 주님과 함께 하늘로 올라가고 나머지는 심판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11:13-14)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복음을 전하다 죽은 증인들은 하늘나라로 올라가고 나머지는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입니다. 이 모습을 보고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렸다고 했습니다. ‘돌리더라’ διδωμι(디도미 1325) 주다, 허락되다, 직고하다, 제사하다, 허락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미 복음을 전하다가 죽었던 증인들이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가고 지진이 나며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칠천을 보면서 남은 자들이 하나님께 직고 하여 회개하고 제사를 드리며 구원을 허락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이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이미 있었던 사건이며 잠시 짐승을 경배하던 자들이지만 구원의 선택 가운데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하나님께 자발적으로 나와 짐승을 경배하던 자들이 죽는 모습을 보면서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와 구원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둘째 화는 여섯째 나팔 재앙이 지나가고 다가오는 셋째 화는 일곱째 나팔 재앙을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탄의 방해가 엄청나게 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복음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이단들의 핍박 속에도 교회와 성도는 끝까지 주님이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위해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요, 세상에서 살기를 각오하면 죽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다 순교당한 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던 골고다의 언덕과 같은 비참함과 고통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주님께서 부활시켜서 영화의 몸으로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떠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까? 복음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내 영혼을 세상과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잠시의 낙을 누리기 위하여 영원한 것을 버린다면 이것처럼 어리석은 자가 어디 있습니까? 모세는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당하는 것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는 바로가 될 수 있었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육신의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애굽의 모든 보화를 버린 사람입니다. 이런 결단이 오늘 나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낙을 따라가는 믿음으로 어떻게 주님의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육신의 쾌락을 따라 살면서 어떻게 고난을 이길 수 있단 말입니까? 골고다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위해 생명을 버리신 주님을 기억한다면 오늘 내가 죄악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 것입니다. 오늘 나에게 유익이 없다 하더라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전파하시는 주님의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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