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산상수훈 중에 마음이 청결한 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를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관점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마 5:8)
♣명제: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보는 복을 받게 된다.
♣목적: 구원받은 백성들의 심령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한다.
주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주제는 이와 같이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보게 되는 복을 받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에 어떠한 마음가짐이 되어야 할 것을 주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의 마음에 무엇이 있어야 청결해 질 수 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고후4: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어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빛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어 주셨습니다.
‘마음에’ καρδια(카르디아 2588) 마음, 심중, 마음 판, 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의 중심에 빛을 비추어주셨습니다. 이 예수그리스도의 빛이 구원받은 심령의 마음 판에 새겨졌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이 들어오고 주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에 예수그리스도의 빛을 비추어주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마음은 부패되었을 것입니다. 빛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둠의 상태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비추셨느니라’ λαμπω(람포 2989) 광채를 내다, 비치게 하다, 빛을 발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의 빛을 우리의 마음 판에 비추어 주셨습니다. 이 빛은 예수그리스도의 고귀하신 광채의 빛입니다. 이 빛을 하나님께서 내 안에 비추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빛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빛이 없으면 빛이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백성들은 이 빛을 발사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의 빛을 내 안에 비추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내안에 있는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의 마음 판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빛이 내 안에 비추어지도록 하나님은 계획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이 빛을 비추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을 비추어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절대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고후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럼 구원받은 백성들의 마음에는 무엇이 담겨있습니까? 보배를 우리의 마음의 질그릇에 담았습니다. 이것은 내가 담고 싶다고 해서 담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담아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보배를’ θησαυρος(데사우로스 2344) 보물, 보화, 보배 합,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τιθημι(티데미 5087) 넣어두다, 담아두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담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보면 내가 보화를 내 마음에 담아둔 것처럼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화를 내 마음에 직접 담아두신 것입니다. 그럼 나는 보물을 담아두는 보배 합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보배 합이 잘나서 보화를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담아두고 싶어서 담아두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그리스도의 보화를 내 마음에 담았다고 교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귀한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의 보화를 넣어서 담아두셨기 때문에 귀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보배 합이 아무리 화려하고 멋있어도 그 속에 보배를 담아두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주인이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찮은 그릇이라도 주인이 귀한 보화를 담아두면 항상 관심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내 안에 계시면 항상 관심을 나에게 두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의 보배를 내 안에 담아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 보배의 직접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귀중한 것입니다. 가치가 나가는 것입니다. 이 보화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갖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만들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배로 비유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광 받으시는 분이며 구원받은 백성들이 소유받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의 보화를 넣어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의 확신이 있다면 내 마음에 예수그리스도의 보화를 하나님께서 넣어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졌으니’ εχω(에코 2192) 차지하다, 생기다, 얻다, 라는 뜻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이 보배가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보배를 마음에 주시니 생겼습니다. 전에는 가치도 없는 흙으로 만든 질그릇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사람들이 바라보지도 않는 천박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그릇에 금은보화를 넣어주시니 값어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질그릇 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보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착각을 합니다. 자신에게 능력이 생기면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일이 잘되면 자만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세워주면 자신 때문에 된 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그리스도의 보화 때문에 사람들이 세워주고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나귀 자체는 너무나 초라하고 볼품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신의 겉옷을 벗어 깔아주고 있습니다. 나귀는 그 위를 걸어가면서 자신에게 이렇게 하는 줄 알고 있으면 교만인 것입니다. 나귀 위에 타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입니다.
그럼 내가 전에는 이 보배를 갖지 못하다가 지금 가지게 되었다면 감사해야 합니다. 탐욕을 부려 주님의 영광을 자신이 가로채면 안 됩니다. 이렇게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화가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하나님께서 넣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보배는 지금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 보배가 내 안에 현재 없다면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진 자입니다.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의 보화가 있다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교만해져서도 안 됩니다. 자만하거나 나태해서도 안 됩니다. 내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화가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며 절대주권이기 때문입니다. 교만해지면 하나님은 촛대를 옮기신다고 했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면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욕심에 눈이 멀어서도 안 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은 사라지고 자신의 영광만 나타내서도 안 됩니다. 우리 마음에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보화로만 채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교훈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을 보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청결한 자는’ καθαρος(카다로스 2513) 깨끗한, 정결한, 죄 없는, 올바른, 이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마음이 청결한 자는 자 범죄로부터 깨끗한 삶을 살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올바른 삶을 살고 윤리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 때에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이미 원죄가 씻겨졌습니다.. 그렇다고 내 마음대로 이 세상에서 죄를 짓고 살면 하나님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화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함께 할 수가 없고 보이지도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깨끗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요13: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온 몸이 깨끗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원죄가 해결된 것입니다.
‘이미 목욕한’ λουω(루오 3068) 목욕하다, 씻기다, 라는 뜻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하게 씻김을 받았습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원죄가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원죄를 깨끗하게 씻겨주신 것입니다. 더 이상 씻을 필요가 없도록 하신 것입니다. 완전하게 씻겨졌으며 선택받은 백성들은 이미 깨끗하게 씻겨지도록 모든 하나님의 행동이 끝이 난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나에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원죄가 해결된 것입니다. 이렇게 목욕을 시키실 것을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깨끗하게 원죄에서 목욕시켜주시고 현재 나는 깨끗한 상태가 된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렇게 깨끗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발만 씻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청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볼 것임이요’ όραω(호라오 3708) 보이다, 나타나다, 알리다, 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청결해지면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보고 싶다고 해서 하나님이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나타나실 때에 보이는 것입니다. 마음에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면 하나님은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하나님은 실제로 나타나 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이 더럽고 죄악 가운데 있으면 하나님은 미래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심령의 상태가 더럽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직접 하나님을 보게 되는데 마음이 청결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깨끗하기 때문에 그 결과로 하나님을 보게 되고 만나게 되며 심령에 들어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눅11:24-26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이 나갔습니다. 이 귀신이 나가서 물 없는 곳으로 돌아다니다가 자신이 나온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이 집이 깨끗하게 청소되고 수리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사람의 심령이 깨끗하게 수리되고 청소되었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화를 넣어두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에게 예수그리스도의 보화를 넣어두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더 악한 귀신 일곱이 들어와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된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하지 못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지도 않습니다.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반드시 반복적인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이 답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우리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화가 담겨있으므로 하나님을 보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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