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요한계시록 3장 설교말씀] 영적 잠에서 깨어나라(계 3:14-22)

체데크 2020. 10. 1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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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계시록 3장 설교말씀 중에서 영적 잠에서 깨어나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영적 잠에서 깨어나라(계 3:14-22)

 

명제: 영으로 깨어있는 자가 주님을 볼 수 있다.

목적: 나의 신앙은 깨어있는 신앙인가? 잠자는 신앙인가? 점검해 보자.

 

사람이 잠을 잘 때는 주변의 상황과 일들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건과 사고가 일어났는지를 알게 됩니다. 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에게 잠자지 말고 깨어있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도적같이 오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영으로 깨어있으라고 말씀하실까? 바로 잠자고 있으면 주님이 오시는 징조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5:14-16)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주님께서 경고하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영으로 깨어 일어나 우리의 행실을 올바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악하니 세월을 아껴 우리는 절대 이런 악한 자의 행실을 본받지 말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복음을 따라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님께서 편지를 쓰시는데 이 교회가 잠자고 있는 교회의 대표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와 같이 현재도 영으로 잠자고 있는 교회가 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라오디게아는 백성의 정의라는 뜻입니다. ‘데니즐리라는 도시와 파묵칼레(히에라폴리스)’라는 도시의 사이에 있는 도시입니다. 데니즐리는 수탉 싸움과 섬유공업이 유명한 도시입니다. 히에라볼리는 “목화성이라는 뜻으로 석회석이 굳어 형성된 세계적인 온천이 있는 도시입니다. 라오디게아는 골로새까지 16Km로 떨어져 있고 히에라볼리는 9Km로 떨어졌습니다.

라오디게아는 많은 은행과 고리대금업자들이 있었습니다. 역사가 타키투스에 의하면 주후 17년과 60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도시의 피해가 막대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나 외부 도시의 원조 없이 도시를 재건했다고 말합니다. 라오디게아에 엄청난 돈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넓고 기름진 땅에서 목양과 목화 재배가 활발하였고 모사 직물과 면직물 공업이 발달했던 곳으로 로마의 상원들이 입고 다녔던 흰 옷들은 거의 이곳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헤로필로스라는 유명한 의사가 있었고 헤로필로스의 의료법에 따라 의과대학과 유명한 약을 제조하는 제약회사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고약과 안약은 귀앓이와 눈병에 특효약이었습니다.

이렇게 라오디게아 도시는 돈과 공업이 발달했던 도시이기 때문에 육으로는 부족한 것이 전혀 없었던 도시입니다. 세상에서 쾌락을 누리며 육을 채우는데 정신이 없었던 도시인데 교회도 한몫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든 형편과 상황을 아시고 마지막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결국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는 교회가 됩니다. 교회가 부흥기를 맞이하여 물질이 풍성한 교회가 되니 교회가 세상에서도 권력과 명예를 가지게 됩니다. 이제 영으로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십자가의 복음이 사라지고 세상의 말씀이 판을 치는 교회가 되었기 때문에 영으로는 모두 잠을 자고 죽은 교회가 된 것입니다. 사데 교회의 모습을 따라가던 교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 빌라델비아 교회는 종교개혁시대를 상징하는 교회입니다. 사데 교회는 중세시대 복음이 죽었던 시대를 의미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새롭게 복음으로 깨어나 종교를 개혁하고 성경으로 복음으로 예수님으로 돌아왔던 시대인데 이 시대를 넘어 핍박이 사라지고 문명이 발전하면서 물질 만능주의에 살다 보니 교회도 물질이 풍성해지고 결국 육으로 돌아가 영으로는 잠자는 교회가 된 것을 상징하는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라오디게아 교회에 예수님을 소개하시기를 아멘이시고 충성되며 참된 증인이고 창조의 근본 되시는 주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멘αμην(아멘 281) 진실로, 그러하도다, 라는 뜻이고 히브리어로는 אמן(아만 539) 확실하게 하다, 지지하다, 충실하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확실하게 하셨고 십자가에서 선택받은 백성들의 죄를 대속하신 분입니다. 이 십자가의 사건이 내 사건이라고 믿어질 때에 아멘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충성’은 πιστος(피스토스 4103) 믿을만한, 신실한, 신뢰하는, 이라는 뜻입니다. 충성은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오직 신실하고 진실함으로 성실하게 주인에게 경외하는 것입니다. 충성은 주인에게 무조건 복종하며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입니다. 이런 예수님께서 교회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위해 죽을 각오로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우리가 믿을만한 신앙이 되어야 하고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증인’은 μαρτυς(마르튀스 3144) 증인, 이라는 뜻입니다. 증인은 순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증인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거짓을 고하면 안 되고 사실적으로 자신이 보고 듣고 알고 있는 것을 증거 해야 합니다. 때론 증인으로 서게 되면 자신의 목숨을 위협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죽을 수밖에 없는 나를 위해 증인으로 증거 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까? 주님을 증거 할 때에 나에게 불이익이 있다 할지라도 죽음을 각오하고 오직 예수님을 증거 하며 복음이 전파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증인의 역할입니다.

(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예수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행위를 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다.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차갑든지 뜨겁든지 둘 중에 하나는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배경은 라오디게아 도시는 히에라볼리라는 도시의 뜨거운 유황 온천물과 탄산수 온천물이 9Km 떨어진 라오디게아에 이르면 물이 식어 미지근하게 변하게 됩니다. 골로새 도시에서 오는 차가운 물도 라오디게아에 오면 미지근하게 변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물이 미지근하게 변하는 것처럼 너희들의 신앙도 미지근하여 잠자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행위 자체가 죽은 것을 말합니다. 육신의 풍족함으로 인해 영적으로는 전혀 움직이지 않고 복음을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교제라든가 예배에 전혀 관심이 없는 교회가 된 것을 말씀합니다.

‘든지’ ειην(에이엔 1498) ~인가, ~인지, 라는 뜻입니다. 동사, 소원법, 현재, 능동, 단수, 2인칭입니다.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말씀하시면서 너희 신앙이 제발 뜨거워지든지 차가워지든지 결단하고 복음으로 돌아오라는 간절한 소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소원법을 사용함으로 신앙을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현재시제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지금 당장 너희의 믿음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하나님 말씀으로 나와 주님과 함께 하자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주님께서는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면 입에서 토해 버리겠다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히에라볼리에서 내려온 온천물은 오염이 심각했습니다. 모사 공장의 폐수와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기 위해 매일 잡는 짐승의 피와 오물들이 라오디게아에 흘러 들어온 온천물과 합쳐지면서 이 물은 미지근하면 절대 마시지 못하는 물이 되어 입에서 구역질이 나고 구토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온천수의 물을 먹지 못하는 것처럼 너희들의 신앙이 주님이 보시기에 결국 토해질 수밖에 없는 믿음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구역질 나는 행동으로 세상의 쾌락을 누리며 돈과 향락에 취해 살고 있는 생활들이 결국 주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의 신앙과 믿음을 입에서 토해 버리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신앙도 라오디게아 교인들처럼 세상에 관심을 두고 영으로 잠을 자면서 행동의 변화가 없는 자들이 된다면 결국 주님께서 나를 토해 버릴 것입니다. 죄악의 구역질 때문에 함께 있지 못할 것입니다. 신앙을 결단해야 합니다. 세상의 쾌락을 끊고 주님을 따라갈 것인지 아니면 세상을 따라갈 것인지를 확실하게 보이라는 것입니다. 중간은 없는 것입니다. 한쪽 발은 세상에 한쪽 발은 주님께 이런 신앙은 결국 토하여 버리겠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보면서 너무 한심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신으로는 부자라고 생각하면서 부족한 것이 전혀 없이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라오디게아는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물질이 풍족했고 환란이나 곤핍함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으로는 모두 죽었던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가난하고 피폐하고 가련하여 영적인 소경이 되어 벌거벗은 채로 다녀도 알지 못했던 것이 바로 라오디게아 교인들이었습니다.

나의 신앙도 이렇게 스스로 부자라고 하면서 교만하고 자만에 빠져 하나님을 멀리하고 예배를 소홀히 하면서 주님을 떠나가면 결국 영으로는 죽는 것입니다. 영으로는 가난하여 마지막 날에 복음을 찾으려고 다녀도 찾을 수 없고 생명의 말씀을 마시려고 해도 마시지 못하여 쓰러지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며 안약을 사서 눈을 발라 보게 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라오디게아 도시는 은행이 있었고 돈이 많이 있던 곳입니다. 주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불에 연단하여 만들었습니다. 불순물을 빼고 금화를 만듭니다. 결국 이처럼 너희도 영적 연단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화를 사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즐거움을 버리고 이생의 자랑을 버리고 예수님의 온전하신 진리를 붙잡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육으로 부자가 되지 말고 영으로 부요한 자가 되어 하나님 나라에서 부자가 되는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흰 옷을 사서 입으라는 것은 이 도시가 모직공업이 발달했기 때문에 육신적인 흰 옷만 입지 말고 영적으로 깨끗한 십자가의 보혈로 죄 씻음 받고 예수님의 의로운 세마포 흰 옷을 입으라는 말씀입니다. 영으로 회복하라는 말씀이고 행동을 죄악에서 의로운 것으로 바꾸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절대 수치를 당하지 말고 다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는 것은 라오디게아 도시가 더러운 온천 때문에 눈병이 많이 발생했고 그러다 보니 안약을 개발하는 제약회사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안약을 바르면 눈병이 나은 것처럼 너희가 영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육의 눈병을 안약을 발라 보게 하는 것처럼 영적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치료하여 예수님의 복음을 깨닫고 잠에서 깨어나 온전하신 예수님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영적 소경이 되면 결국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고 주님이 오실 때에 심판당하게 됩니다.

현재 우리는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흰 옷을 입고 있습니까? 영적 소경에서 눈이 떠졌습니까? 주님을 온전하게 바라보며 영적 수치를 당하지 않고 있습니까? 이제 우리는 영적인 잠을 자고 있다면 깨어나야 합니다. 주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책망하신 말씀이 바로 오늘 나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예수님은 무조건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회개할 길을 열어주시는 분입니다. 책망하여 징계하시는 것은 주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며 자녀이기 때문에 징계를 내리시는 것입니다.

‘징계하노니’ παιδευω(파이듀오 3811) 훈련시키다, 교육하다, 징벌하다, 교정하다, 라는 뜻입니다. 징계는 주님께서 깨어나라고 교육시키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교정시키고 반복 훈련시켜 다시는 잘못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징계입니다. 반복 훈련을 받으면 몸에 습관이 들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반복 훈련된 행동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의로운 행동을 주님으로부터 훈련받으면 죄악 가운데서도 의로운 행동이 나오게 되지만 죄악에 물들어 있으면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복음으로 훈련받고 연단되어 오직 주님의 이름을 높여야 합니다.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회개하고 돌아온 자들은 주님께서 직접 문 밖에 서서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주님이 마음에 들어와 함께 더불어 먹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양은 자신의 음성을 듣고 따라온다고 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어주면 주님이 평생에 말씀의 꼴을 먹여주시는 것입니다. 이것도 영으로 깨어 있는 자가 문을 열 수 있습니다. 늑대의 음성에 문을 열면 죽는 것입니다.

분별하지 못하면 주님의 음성을 알 수 없습니다. 잠자고 있으면 주님을 볼 수 없고 말씀을 해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깨어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깨어라’ γρηγορεω(그레고레오 1127) 지켜보다, 망보다, 정신 차리고 있다, 경계하다, 라는 뜻입니다. 깨어 있는 것은 나의 믿음을 지키고 있는 것이며 마귀가 오는지 망을 보고 있으며 영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깨어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깨어있는 것은 שקד(샤카드 8245) 지켜보다, 감시하다, 경계하다, 라는 뜻입니다. ‘샤카드’의 의미는 거룩하신 하나님 안에서 말씀으로 분석하고 깨달아 주님이 주시는 영감으로 천국에 소망을 두며 예수님을 통해 풍성한 은혜를 누린다는 의미입니다.

깨어있는 자가 주님께 소망을 두고 천국을 바라보면서 마귀의 미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자는 절대 영으로 깨어나지 못합니다. 예수님 안으로 들어와야 하나님이 보이고 천국이 보이는 것입니다.

(3:21-22)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신앙으로 이기는 자는 주님의 보좌에 앉게 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이기시고 승리하셔서 부활 승천하시고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은 것과 같이 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으로 승리한 자는 하나님의 보좌에 앉히는 영광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영적인 잠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문명으로 발달되어 가고 먹을 음식이 풍족하고 레저용품이 난무하면서 자신의 생활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취미생활을 하고 육의 기쁨을 누리는데 시간적 투자가 많지만 나의 영혼을 살리는 일에 시간 투자가 적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잠자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깨어 승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께 칭찬을 들으며 세상에 관심을 두는 자가 아니라 주님께 나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주님은 깨어있는 자를 찾으셔서 함께 주님의 일을 하자고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항상 깨어 승리하시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니엘 3장 주일 설교 말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단3:8-18)

안녕하세요. 오늘은 다니엘 3장 주일 설교 말씀 중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이라는 주제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단 3:8-18) ♣명제: 느부갓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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