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요한계시록 13장 설교말씀] 양 같은 짐승의 능력(계 13:11-18)

체데크 2020. 10. 12. 20:06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계시록 13장 설교말씀 중에서 양 같은 짐승의 능력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양 같은 짐승의 능력(계 13:11-18)

 

명제: 양 같은 짐승들이 666표를 준다.

목적: 복음의 말씀에 서지 못한 자들은 666의 표를 이마에 받게 된다.

마지막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세상을 혼란하게 하고 특별히 복음을 가진 성도들과 교회를 핍박하게 됩니다. 많은 성도들이 가톨릭의 교황에 의해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사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악랄하게 성도들을 괴롭히고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환상 중에 또 다른 짐승을 보게 됩니다.

(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어린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짐승의 실체가 무엇일까요?

‘올라오니’ αναβαινω(아나바이노 305) 올라가다, 오르다, 라는 뜻입니다. 이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분명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짐승이 올라오는 때와 장소가 있습니다. 지금 현재에 이런 짐승들이 땅에서 올라와 성도들을 죽일 것입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목적을 가지고 올라오게 됩니다. 남녀 누구든지 올라와서 개인적으로 죽이려고 합니다. 이 짐승은 양 같이 생겼습니다. 바로 어린양 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가지고 나타납니다. 두 뿔이 있다는 것은 권세를 가졌다는 뜻입니다. 바로 세상의 주권과 종교 권을 가지고 행사하는 것입니다. 이리들도 어린양의 모습을 하고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들이 하는 말은 복음이 아니라 용처럼 말을 합니다. 바로 이단의 교리들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사탄을 경배하게 하고 인간을 하나님으로 만드는 교리들을 전파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 짐승들이 먼저 나온 짐승보다 더 악독하고 권세가 있는 짐승들입니다.

(13:12)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이 짐승은 먼저 나온 가톨릭의 교황의 권세를 받아가지고 그 앞에서 행하면서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합니다. 바로 죽게 되었다가 상처가 나은 가톨릭 교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자생한 이단들은 모두 가톨릭의 교리들을 본받아서 만들었습니다. 교황처럼 종교 권과, 물질 권과, 인사권을 가지고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니 결국 먼저 나온 짐승에게 경배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나은 자니라’ θεραπευω(데라퓨오 2323) 고쳐주다, 나음을 얻다, 섬김을 받다, 라는 뜻입니다. 가톨릭 교황의 권세가 땅에 떨어졌다가 다시 회복하게 됩니다. 고침을 받고, 나음을 얻어 다시 섬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이 역사적으로 있었으며 이미 과거에 이런 사실들이 나타났습니다. 교황의 권세는 다시 회복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을 말합니다. 사탄이 교황의 권세를 세워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많은 무리들과 이단들이 교황을 따르고 있습니다.

(13: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양 같은 짐승은 가톨릭으로부터 많은 권세를 받아 큰 이적을 행하게 됩니다. 사탄의 이적을 받은 자들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적으로 한국의 이단들은 이적을 나타내는 교주들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불을 끌어당기는 이적을 나타내고 파도를 멈추게 하는 이적을 나타내어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탄의 이적을 보고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적만 보고 가다 보면 결국 이단에 빠지게 됩니다. 복음의 말씀 곧 구원 얻을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행하되’ ποιεω(포이에오 4160) 만들다, 창조하다, 행하다, 라는 뜻입니다. 양 같은 짐승과 같은 이단들은 사탄의 이적을 행하는데 창조하여 만들어 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들이 실제적으로 있기 때문에 성도들도 미혹당하여 빠지게 됩니다. 현재도 이렇게 많은 자들이 이적을 행함으로 빠지게 되고 이단의 교주들은 자발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성도들을 미혹하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단체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곳에 한 번 미혹되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미 사탄의 미혹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불과 같이 이적을 나타내는 이단을 보여주는 이단이라고 합니다.

(13:14)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그런데 양 같은 짐승이 하는 짓을 보면 이런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여 결국 먼저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는 것입니다. 먼저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고 합니다. 결국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는 바로 가톨릭의 교황인 것입니다. 모든 이단들이 가톨릭의 교리들을 모방하여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미혹하여’ πλαναω(플라나오 4105) 길을 잃게 하다, 미혹하다, 빗나가다, 방황하다, 라는 뜻입니다. 양 같은 짐승이 성도들을 미혹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을 미혹하여 영적인 길을 잃게 하고 있습니다. 바로 복음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떠나게 하는 것이 양 같은 짐승들이 하는 짓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하고 영적 교훈에서 벗어나게 하여 죄를 짓게 하고 영혼이 방황하게 만들어 결국에는 불 못으로 떨어지게 하는 것이 바로 현재 이단들이 하는 수법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단들의 미혹이 실제적으로 있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인가요? 바로 현재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이런 일들이 한국교회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많은 이단들이 일어나 영혼들을 죽이고 있는데 이들은 훈련받아 능동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을 하는데 한 명씩 접근하여 미혹하게 됩니다. 이단의 교리와 기적들을 보고 따라가는 자들은 결국에 영혼이 파괴되어 죽습니다. 복음의 말씀이 아니면 단호하게 잘라야 합니다. 이 짐승이 미혹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먼저 짐승을 위해 우상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바로 인간을 하나님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교황은 이미 신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단들은 바로 이런 교황의 앞잡이가 되어 사탄을 경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곳에 빠진 자들은 모두 먼저 나온 짐승들을 경배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13:15)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양 같은 짐승이 권세를 받아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고 있습니다.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고 있습니다. 이 뜻은 무엇입니까? 바로 가톨릭의 교황의 교리가 살아난 것을 말합니다. 인간을 하나님으로 만드는 교리가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을 양 같은 짐승들이 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단들을 보면 항상 교주가 있습니다. 이 교주는 바로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교황에게 배웠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종교 권을 가지고 단체를 좌지우지하고 교주의 말이 법이 되는 것입니다.

‘우상에게’ εικων(에이콘 1504) 굴복하다, 복종하다, 라는 뜻입니다. 죽어있던 형상에게 생명을 넣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굴복하게 만들고 복종하게 만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우상에게 경배하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인간이 하나님이 되는 것에 대한 굴복이고 복종입니다. 이 우상을 만들어 놓은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죽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하기 위하여 만들었습니다. 가톨릭의 우상은 단 하나인데 바로 인간을 하나님으로 만든 교황입니다. 여성명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교황의 모습을 보면 인자하고 사랑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됩니다. 모든 사람들의 보기에 품행이 방정하고 존경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무시무시한 영혼을 죽이는 거짓된 우상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모습이라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으면 죽이게 됩니다. 죽이는 것이 바로 양 같은 짐승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경배하지’ προσκυνεω(프로스퀴네오 4352) 예배하다, 경의를 표하다, 경배하다, 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우상에게 경배를 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하지만 예배를 드리지 않는 자들은 죽이게 됩니다. 가정법을 쓰고 있는 것은 내가 지금 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으면 죽음을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버리고 경배하면 죽임을 당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를 할 때에 나는 오직 십자가의 복음을 붙잡고 지켜나가야 합니다. 능동적으로 끝까지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신앙을 지킬 때에 고통과 핍박은 당연히 온다고 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때를 살고 있습니다. 나의 신앙을 뒤돌아보면서 적그리스도의 공격을 준비해야 합니다. 사탄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이 주신 능력으로 이겨나가야 합니다.

(13:16)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어린양의 탈을 쓰고 들어온 짐승이 하는 짓이 무엇입니까? 바로 모든 자 작은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오른손과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있습니다. 이 표식은 바로 짐승을 섬긴다는 표시입니다.

‘표를’ χαραγμα(카라그마 5480) 표, 새긴 것, 이라는 뜻입니다. 이 표는 새겨 넣은 것입니다. 이 표를 새겨 넣은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짐승을 경배하게 하는 표시입니다. 중성을 쓰고 있는 것은 남녀노소 막론하고 모두가 이 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수로 한 명씩 이마에 새겨 넣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양 같은 짐승들이 오른손과 이마에 이 표를 새겨 넣게 되는 것일까요? 유대인들의 개념에 오른쪽은 영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빛이 있는 쪽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남쪽이 오른쪽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오른손에 이단의 교리로 묶어 버리고 선서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 이마는 무엇입니까?

(3:7-8)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어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 보라 내가 그들의 얼굴을 마주보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마주보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들의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마를 굳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마는 사람의 사고방식과 사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이스라엘의 이마는 우상의 사상으로 가득 차 있는 반면에 에스겔은 복음으로 이마에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양 같은 짐승이 오른손과 이마에 표를 주고 있는 것은 바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을 하나님으로 섬기게 하는 교리의 사상을 심어 놓는 것입니다. 이 사상이 머리에 박히면 절대 빠지지 않습니다. 정신에 새겨 놓았기 때문에 이 사상을 빼기란 너무 힘이 듭니다. 십자가 복음의 말씀이 아니면 절대 빠지지 않습니다. 결국 구원받지 못한 백성들은 이 표를 모두 받게 되어 있습니다.

(13: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며 수라고 했습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은 이 표가 예전에는 바코드라고 했습니다. 바코드가 나오기 전에는 모두가 이마에 바코드를 심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코드를 쓰지 않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짐승의 표를 받았다는 것입니까? 지금은 바코드 이야기는 들어가고 베리칩을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베리칩을 몸속에 넣는다고 법으로 통과되었다고 또 떠들썩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짐승의 표라고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계시록은 영혼을 죽이는 악한 세력들과 싸우는 것입니다. 육신에 칩을 넣었다고 해서 영혼이 죽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이단의 교리가 머리에 들어가서 영혼이 죽고 인간을 하나님으로 믿게끔 조종당하여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앞으로 과학이 발달하여 더 좋은 시스템이 나오면 그것이 짐승의 표라고 말할 것입니까? 절대 아닙니다. 시대가 바뀐다고 말씀이 바뀌지 않습니다.

그럼 이 표를 받은 자 외에 매매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바로 자신들의 교주의 교리에 빠진 자들끼리는 말이 잘 통합니다. 서로 잘 맞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대화가 통하지 않고 말을 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바로 매매가 되지 않습니다. 일방 통행적인 대화만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섬기는데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은 인간을 하나님으로 섬기니 어떻게 매매가 될 수 있습니까? 이제 베리칩 때문에 고민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것이 짐승의 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영혼을 죽이지 못합니다. 우리가 지옥의 불에 떨어지는 것은 영혼이 죽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영혼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이런 것들에는 고민하고 걱정하면서 정작 이단의 교리들은 복음으로 정죄하지 않고 무관심하고 있습니까? 정작 중요한 짐승의 교리들에서 성도들을 깨어나게 해야 합니다. 경각심을 주어 이단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13: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지혜가 있는 자는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수인데 육백육십육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육백육십육이 무엇입니까?

1. סתור(쎄투르) 200+6+400+60 = 666 숨은, 이라는 뜻입니다. 어근은 סתר(싸타르 5641) 숨다, 자신을 감추다, 변장하다, 비밀로 하다, 참소하다, 피하다, 라는 뜻입니다. 짐승의 수는 바로 몰래 들어와 자신을 감추고 변장하여 성도들을 참소하는 자입니다.

2. תסור(타스루) 6+200+60+400 = 666 고개를 돌리다. 어근은 סור(쑤르 5493) 변절하다, 타락하다, 길을 잘못 들다,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다, 라는 뜻입니다. 바로 이 짐승들은 마음이 변절하여 타락하고 길을 잘못 들어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선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주는 표는 바로 머리에 자신들의 교리들을 박아 넣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적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짐승의 수인 666은 자신을 감추고 변장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고 참소하여 죽이는 존재이고 타락의 길로 인도하는 자이며 변절자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여 불 못으로 던지는 존재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사악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듣고 함부로 행동하여 다루기가 힘들며 하나님께 반역하고 비뚤어져 순종하지 않는 존재로서 고집이 세서 길들이지 않은 짐승이며 악한 존재입니다. 이들이 바로 마지막 때에 이단들입니다.

이단에 빠지면 짐승의 표를 받음으로 죽게 됩니다. 잘못된 이단의 교리가 머리에 박혀 주님은 사라지고 짐승의 교리의 사상이 가득 차게 되어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이단의 짐승을 믿게 되므로 영혼이 죽게 됩니다. 짐승의 표인 666은 육신을 죽이는 존재가 아니라 영혼을 죽이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단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때에 우리는 오직 주님의 복음 말씀에 서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버리면 우리는 짐승의 표를 받고 결국 영원한 죽음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마지막 날에 적그리스도 이단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전파하여 우리의 머리에 참람된 이름들을 박아 넣으려고 할 것입니다. 이때에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로 무장하여 주님의 보혈이 항상 내 안에 흘러갈 수 있도록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단들은 나의 영혼을 죽이기 위해 노릴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이단들을 경계하고 나의 영혼을 뒤돌아보며 거짓된 교리에 미혹당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계시록 14장 설교말씀] “시온 산의 어린양”(계14:1-5)

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계시록 14장 설교말씀 중에서 시온 산의 어린양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시온 산의 어린양”(계 14:1-5) ♣명제: 시온 산의 어린양을 바라보는 자는 십사만 사천밖에 �

cdk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