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창조사역 설교문 중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셋째 날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창조사역 셋째날”(창1:9-13)
하나님께서는 계속적으로 창조사역을 하시면서 오늘은 셋째 날에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9절에 ‘이르시되’ 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 단어는 (אמר아마르) 라는 단어입니다. 이 뜻은 선언하다, 의도하다, 명령하다, 숙고하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칼형으로 능동형으로 직접 선포한 것입니다. 자신이 상대에게 직접 말하듯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한 것입니다.
사람도 상대에게 할 말이 있을 때에 심사숙고하여 그 사람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듯이 하나님께서도 이미 창조되어 있는 물을 명령하여 한 곳으로 모이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모이고’ 라고 하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 단어는 (קוה카바) 라는 단어입니다. 이 동사는 닢알형으로서 수동태형입니다. 이것은 상대의 명령을 받아서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형태입니다. 그리고 미완료형으로서 계속적으로 물들이 모여지고 있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 스스로 모여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물들이 모여짐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이다’의 뜻은 함께 묶다, 수집하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물들을 함께 묶었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신 것입니다.
우리도 믿음 생활을 하면서 성급하면 안 됩니다. 기도를 하고 응답이 없다고 성급하게 기도를 멈춰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인내하시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구원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한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까지 주님은 기다리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너무나 성급하게 사람을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드러나라’ 라고 하는 단어도 있는데요. 이 단어는 (ראה라아) 라는 단어입니다. 이것도 닢알형으로서 수동형입니다. 드러난 것이 자신 스스로 드러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땅이 드러내짐을 당한 것입니다. 이 뜻은 숙고하다, 나타나다, 고려하다, 분별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땅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분별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이 없이는 하나도 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땅이나, 하늘이나, 모든 생물들까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들은 더더욱 하나님의 뜻대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운행하시고 우리에게 명령하실 때에 축복도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주님이 되어야 인생이 기뻐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기서도 ‘되니라’ 라고 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היה하야) 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칼형의 동사입니다. 이것은 능동형으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물과 땅이 능동적으로 명령을 받은 데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뜻은 존재하다, 발생하다. 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명령을 받으면 그대로 행동을 해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자신이 능동적으로 행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명령을 했는데 엉뚱한 방향으로 하면 그것은 불순종입니다. 오늘 물과 땅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받아들였고 그리고 그대로 순종하여 뭍이 되었습니다.
10절에 ‘부르시고’ 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 단어는 (קרא카라) 라는 단어인데요. 칼형 능동형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뭍을 직접 땅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모인 물을 바다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직접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명령하신 것들을 보시고 너무나 좋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되니까 하나님은 보시고 너무 기뻐하셨고 좋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행하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라고 칭찬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신앙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하는 칭찬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11절에 ‘맺는’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 단어는 (זרע자라) 라고 하는 단어인데요. 히필형으로 쓰여졌습니다. 이것은 사역능동형으로서 다른 사람의 명령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고 하시니 그대로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주관하심으로 된 것입니다. 아주 강력하게 명령을 하셨기 때문에 땅이 이 모든 것을 만든 것입니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내는 채소와 나무를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 속에서 이런 것들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하심이 있으면 우리의 인생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를 작정하시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모두 이루어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함께 하시면 두려움도 없습니다.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히필형으로 아주 강한 사역능동형으로 우리의 인생에 개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절에 땅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고 했을 때에 그대로 만들어 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뻤습니다. 그런데 셋째 날에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두 번이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화요일을 축복의 날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축복을 갑절로 받은 날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땅은 마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길가 밭과, 바위 밭과, 가시밭과, 옥토 밭을 말씀하시면서 마음이 상태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령의 밭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심령의 밭이 얼마나 순종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땅은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여 그대로 열매를 맺었습니다. 농부들은 말합니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조금 있으면 논에 모를 심게 됩니다. 농번기가 찾아오는데요. 농부가 열심히 땅에 투자하고, 비료도 주고, 거름도 주면 반드시 많은 열매를 가을날에 맺게 됩니다. 그러나 열심히 땅에 투자하지 않으면 소출이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땅은 정직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밭도 이와 같이 정직하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투자한 만큼 우리의 신앙과 믿음이 자라나기를 원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칼형으로 능동적으로 그대로 행동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많은 소출을 만들어 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려면 우리의 신앙과 믿음이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불에 태워지게 될 것이다. 우리의 믿음이 온전하게 되는 방법은 오직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늘 동행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각과 맞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뜻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저 세상에 우리가 붙어 있다면 결국 말라죽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세상에 붙어있으면 이것은 죽는 것입니다. 영양분을 공급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지가 나무의 본체와 떨어졌는데 어떻게 살 수가 있습니까? 절대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과 떨어져 생활하면 결국 영적으로 곤핍해지고 더 시간이 흘러가면 말라죽는 것과 같이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말하지 못하는 이런 물과 땅도 순종할 때에 너무나 기뻐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두 번씩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은 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라고 칭찬을 받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믿음과 신앙이야 말로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땅이 열매를 맺을 때에 기뻐하신 것처럼 이제 우리의 신앙에도 열매가 맺어질 때에 하나님은 즐거워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뜻대로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인생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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