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데살로니가전서 성경 좋은 말씀] 재림의 갑작스러움(살전 5:1-28)

체데크 2022. 2. 3. 14:54
반응형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서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주님의 재림은 아무도 모르게 도둑같이 임한다고 말씀합니다. 때와 시기를 인간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항상 긴장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재림의 현상은 알지만 언제 어떻게 어디에서 오시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때가 되매 주님의 재림을 깨닫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재림의 갑작스러움(살전 5:1-28)

 

1-11, 재림의 갑작스러움

[1-2]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 . . .

바울은 말한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아크리보스)[정확히, 충분히] 앎이라.” ‘때와 시기는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가리키며 그때는 죽은 자들이 부활하고 산 자들이 변화되는 때이기도 하다. 주의 재림의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쓸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에 관해 그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의 날은 구약성경에 여호와의 날로 자주 언급된 날이다. 그 날이 밤에 도적같이 온다는 표현은 주님 자신의 표현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재림의 갑작스러움을 나타낸다. 마태복음 24:42-43,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 . . .

바울은 또 말한다. “[이는]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못할 것임이니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한다는 말은 사람들이 심판과 멸망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안일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주께서도 재림 직전의 세상의 모습을 묘사하시면서 노아의 때와 같이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며, 롯의 때와 같이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는다고 말씀하셨다(24:37-38; 눅 17:26-28). 그때 멸망이 홀연히 임하게 될 것이다. 그 멸망의 갑작스러움은 마치 잉태된 여인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을 것이다. 홀연히 임하는 그 멸망을 피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주의 재림은 세상의 종말이 될 것이다. 주의 재림의 날은 악인들에게는 멸망의 날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지금 준비되어야 한다. 우리의 개인의 죽음도 예상할 수 없이 오며, 주의 재림도 갑작스럽게 올 것이다.

[4-6]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 . . .

바울은 또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형제들아라는 말은 본 서신에서만 14회나 나온다(1:4; 2:1, 9, 14, 17; 3:7; 4:1, 10, 13; 5:1, 4, 12, 14, 25). 이것은 매우 친근한 호칭이다. 예수께서도 우리를 형제들이라고 부르셨다. 마태복음 28:10,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모든 성도는 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하나님의 가족이며 주 안에서 형제 자매이다.

본문은 어두움에 있는 자들에게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만, 어두움에 있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못할 것이며, 예수 믿고 구원 얻은 자들은 어두움에서 빛으로 나온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주의 재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한다. 어두움에 있는 자들은 안일하게 살다가 갑자기 멸망을 당하지만, 빛의 자녀들은 준비하며 살다가 재림을 맞이할 것이다.

본문은 빛의 아들과 어둠의 아들, 낮의 아들과 밤의 아들을 서로 대조시킨다. 어둠의 아들과 밤의 아들은 세상을 가리키며 구원받기 전의 우리의 상태를 가리킨다. 밤은 안 좋다. 밝은 것이 좋다. 범죄자들은 밤을 좋아하지만, 그것은 밤이 좋아서가 아니고 자기 행위를 감추기 위해서일 뿐이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어두움에 속하지 않고 빛에 속한다. 그들은 어두움의 아들이나 밤의 아들이 아니고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다. 어두움은 무지와 부도덕과 불행을 가리키고, 빛은 지식과 의와 행복을 가리킨다.

그런데 빛의 아들은 마땅히 행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자지 말고 깨어 근신해야 한다는 의무이다. 영적으로 잔다는 말은 죄를 짓고 불경건하고 부도덕한 생활을 한다는 뜻이다. 반면에 깨어 근신한다는 것은 정상적 신앙생활, 곧 죄짓지 않고 성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의롭고 진실하고 선하게 사는 것을 가리킨다. 성도는 깨어 근신해야 한다. 우리는 정상적 신앙생활을 힘써야 한다.

[7-10]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 . . .

바울은 또 말한다.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것임이니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본문은 깨어 근신하는 생활을 믿음, 사랑, 소망의 생활로 묘사한다. 믿음, 소망, 사랑은 성도의 정상적 신앙생활의 모습이다. 우리가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노하심에 이르게 정하신 것이 아니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정하셨기 때문이다. 범죄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에 이르게 될 것이나,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사는 성도는 하나님의 정하신 뜻대로 구원받은 자이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목적도 우리가 깨든지 자든지 주와 함께 살게 하려는 데 있다.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은 큰 복이다. ‘깨든지 자든지라는 말은 문자적 의미나 비유적으로 의미가 다 가능하다. 성도의 정상적 신앙생활은 항상 주 안에 거하며 주와 함께 사는 것이다.

[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 . . .

바울은 또 말한다.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피차 권면하라는 원어(파라칼레이테 알렐루스)는 4장 끝에 서로 위로하라는 말과 동일하다. ‘피차 덕을 세우라는 말은 서로에게 유익을 주어 서로를 건립하라는 뜻이다. 그것은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위로하고 격려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성도는 자신의 신앙 성장에만 힘쓸 것이 아니고, 다른 이들의 신앙 성장을 위해서도 힘써야 한다.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는 말은 이 교훈이 새로운 것이 아니고 이미 그들이 행하고 있는 바임을 보인다. 그것은 그의 교훈이 그들의 현재 행위를 인정하면서 준 교훈임을 나타낸다. 이 말씀도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 우리도 다른 이들을 권면할 때 그들의 현재 선한 행위를 무시하지 말고 인정하면서 권면해야 할 것이다.

1절부터 11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주의 재림의 갑작스러움을 바르게 이해하고 늘 깨어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주 예수께서는 도적같이 다시 오실 것이다. 그것은 그가 어느 순간에도 오실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갑작스럽게 오실 것이라는 뜻이다.

둘째로, 주의 재림은 멸망받는 자들에게는 홀연히 이루어질 것이다. 멸망이 그들에게 갑작이 임하며, 그들은 그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셋째로, 그러나 주의 재림은 빛의 자녀들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깨어 있기 때문이다. 성도의 깨어 있는 삶이란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삶, 곧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가리킨다. 또 우리는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권면함으로 피차 덕을 세워야 한다.

12-15, 교회 생활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 . . .

바울은 말한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라는 말은 교회의 모든 직분은 봉사직임을 보인다. 직분자들은 성도들을 위해 수고하는 자들이며 또 수고할 때 그 직분의 의미가 있다. 수고하지 않는 자에게는 그의 직분이 영광이 아니고 부끄러움일 뿐이다.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은 목사들과 장로들을 가리킨다. 다스리며 권하는 것은 치리권과 교훈권에 해당한다. ‘권한다는 원어(누데테오)는 ‘훈계한다는 뜻으로 일반적인 권면보다 더 강한 의미를 지닌다. ‘주 안에서라는 말은 주의 말씀 진리와 주를 믿는 믿음 안에서라는 뜻이다. 교회의 목사와 장로들은 주 안에서교인들을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이다. 성경에 계시된 주의 진리와 주께 대한 바른 믿음을 떠나서는 목사와 장로들의 권위는 없다. 교회의 직분은 오직 성경적 교훈과 믿음 안에서만 권위가 있다.

[13]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 . . .

바울은 또 말한다.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라는 원어(디아 토 에르곤 아우톤)그들의 일 때문에라는 뜻이다.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라는 말은 하나님을 사랑함이 곧 말씀을 사랑함이며 그것이 교역자를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남을 보인다. 하나님의 일은 구원의 복음을 통해 영혼들을 구원하는 말씀 사역이다. 예수께서는 전도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1:38). 또 그는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에게 전도하라고 부탁하셨다(28:19-20).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에서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보다 더 귀하고 중요한 일은 없다. 말씀 사역이 가장 귀하기 때문에, 성도들은 말씀의 일꾼들을 가장 귀히 여겨야 한다. 목사들에 대한 성도들의 태도는 곧 주 예수께 대한 태도이다(10:40; 25:40, 45).

본문은 또 너희끼리 화목하라고 말씀한다. 갈라디아서는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투기등의 육신의 죄악된 일을 행하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경고했고(5:19-21), 에베소서는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교훈했다(4:2-3). 교회는 분쟁하지 말고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화목하고 일치단합해야 한다.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없는 자들을 . . . .

바울은 또 말한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우리는 서로 돌아봄으로 다른 성도를 인격적으로 성숙케 하고 교회를 세워나가야 한다. 우선, 우리는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해야 한다. ‘규모 없는이라는 원어(아탁토스)무질서한, 복종치 않는이라는 뜻이다(BDAG). 교회에는 성경의 교훈을 복종치 않고 무질서하게 행하는 자들이 있다. ‘권계한다’(누데테오)는 원어는 훈계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무질서하게 행하는 자들을 훈계하고 책망해야 한다.

또 우리는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해야 한다. ‘마음이 약한이라는 원어(올리고프쉬코스)낙심된이라는 의미이다. 교회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낙심하는 자들이 있다. 우리는 낙심된 교우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야 한다.

또 우리는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어야 한다. ‘힘이 없는이라는 원어(아스데노스)약한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몸의 연약 뿐만 아니라, 또한 마음의 연약도 가리킬 수 있다. ‘붙든다는 원어(안테코마이)는 ‘꼭 붙든다는 뜻이다. 우리는 몸이 약한 자들이나 마음이 약한 자들을 꼭 붙들어주어야 한다.

또 우리는 모든 사람에 대해 오래 참아야 한다. 우리의 신앙 인격의 성장과 성화(聖化)는 매우 더디고 불완전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사람에 대해 오래 참지 못한다면, 우리의 인간 관계는 잘 유지되기 어렵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시듯이, 우리도 서로를 향하여 오래 참아야 한다.

[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 . . .

바울은 말한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우리는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자에게 악으로 보복하지 말아야 하고 성도 상호간이나 모든 사람 즉 불신자들에 대해서까지도 항상 선을 행해야 한다. 주께서는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라,”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5:39-40, 44).

12절부터 15절까지는 교회생활에 필요한 교훈을 준다. 첫째로, 성도들은 목사와 장로들을 그들의 일 때문에 가장 귀히 여겨야 한다. 둘째로, 교인들은 서로 화목하며 일치단합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규모 없는 자들, 즉 성경의 교훈에 복종치 않고 무질서하게 행하는 자들을 권계해야 한다. 넷째로, 우리는 마음이 약한 자들, 즉 낙심된 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야 한다. 다섯째로, 우리는 힘이 없는 자들, 즉 심신으로 연약한 자들을 꼭 붙들어주어야 한다. 여섯째로, 우리는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아야 한다. 일곱째로, 우리는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행해야 한다.

16-18,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

[16] 항상 기뻐하라.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말한다. 기쁨은 슬픔과 대조된다. 인간의 슬픔과 슬픈 일들은 죄의 결과이지만, 기쁨은 죄사함과 구원의 결과이다. 성도의 기쁨의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고 장차 영광스럽게 부활하고 변화되어 천국에서 영생할 것이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다. 또 이것은 성도가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도의 기쁨이 그의 환경이나 육신의 조건 때문이라면, 항상 기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이 우리의 기쁨의 이유가 아니라면, 우리가 어떻게 건강할 때뿐 아니라 아플 때도, 물질적 여유가 있을 때뿐 아니라 가난할 때도, 또 평안할 때뿐 아니라 환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고 또 그렇게 기뻐해야 한다.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바울은 또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한다. 기도는 믿음의 표현이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고 의지할 때 가능하다. 잠언 3:6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교훈한다. 성도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기 때문에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다. 감사할 때는 감사의 기도를, 자신의 실수와 연약을 깨달을 때는 고백의 기도를, 또 무엇이 꼭 필요할 때는 간구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 특히 성도의 믿음은 어려운 처지에서도 낙망치 않고 간구하는 행위로 나타난다. 믿음이 있는 자는 낙심하지 않고 기도할 것이다. 그러나 성도에게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낙심치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성도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 물론 기도하는 것이 때때로 힘든 일이지만, 성도에게 기도는 결코 짐스런 일이 아니고 복된 특권이다. 성도는 기도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힘을 얻고 응답을 받는다.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 . . .

바울은 또 말한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도가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것도 주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선하심을 인정할 때만 가능하다. 이 세상과 온 우주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이루어진다. 로마서 11:36, “이는 만물[모든 것]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좋은 것들을 주실 것을 안다.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평안하고 형통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환난과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한다. 고난은 성도로 하여금 죄악된 일을 다 버리고 거룩하게 하고 높은 마음을 버리고 겸손하게 하고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게 하는 유익이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고 그렇게 감사해야 한다.

본문은 이런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 큰 복과 특권이다.

본문은 이와 같이 성도의 복된 특권의 삶에 대해 교훈한다. 그것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복과 이 특권을 마음껏 누리자.

19-28, 말씀, , 거룩, 기도

[19] 성령을 소멸치 말며.

바울은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말한다.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것은 성령의 감동과 감화를 억누르지 말라는 뜻이라고 본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먼저 성령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을 구별해야 한다. 성령의 생각은 성경 말씀에 합한 생각이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의 교훈대로 경건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생각하는 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생각이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성경이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 점들도 있다. 그런 때에는 우리가 각각 소신껏 행해야 한다. 로마서 14:5,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14:22,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또 초대 예루살렘 교회처럼 우리는 때때로 많은 변론 후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기도 한다(15). 그러나 성경이 명확히 가르치는 죄와 의, 진리와 비진리, 정통과 이단은 명확히 구별되어야 한다.

또 성령의 생각은 항상 질서 있는 생각이다. 하나님은 결코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고린도전서 14:33,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자기 형편과 처지에 맞지 않는 과분한 생각이나, 공동체의 화평과 일치를 고려치 않는 무질서한 생각이나, 남의 의견들을 잘 듣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독선적 생각은 성령의 생각이 아니고 육신의 생각이라고 본다. 우리는 성령의 감동을 소멸치 말아야 한다.

[20] 예언을 멸시치 말고.

바울은 또 예언을 멸시치 말라”고 말한다. 사도 시대에는 예언의 은사가 있었다. 예언은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 교훈적 내용이다. 예언은 물론 장래 일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교훈적 내용이든지 장래 일에 대한 것이든지 예언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성도가 그것을 멸시하거나 경시해서는 안 되었다. 예언을 멸시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 된다.

사도들을 통한 하나님의 예언들은 신약성경책들에 충족하게 기록되었다. 오늘날 신구약 66권의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는 교훈과 예언의 말씀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딤후 3:16).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성경적 교훈, 성경적 예언, 성경적 교리, 성경적 설교를 멸시치 말고 존중하고 믿고 받고 행하고자 힘써야 한다.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바울은 또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고 말한다. 지혜로운 성도는 사람들의 말을 다 믿지 말고 그것을 검토하고 판단하고 분별해야 한다. 잠언 14:15,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그 행동을 삼가느니라.” 요한일서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오늘날 사탄과 악령들의 역사가 많은, 배교와 타협과 혼란의 시대에, 우리는 선과 악, 의와 불의, 진리와 거짓, 정통 교리와 이단을 분별해야 하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곧 선과 의와 진리와 정통 교리만을 붙잡아야 한다.

[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바울은 또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말한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라는 원어(아포 판토스 에이두스 포네루)는 ‘모든 형태의 악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이단의 악, 타협의 악, 세속주의의 악, 불결의 악, 미움의 악, 시기의 악, 분열의 악, 거짓의 악, 불충성의 악, 나태의 악 등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악한 생각도, 악한 말도, 악한 행위도 버려야 한다. 우리는 음란한 옷차림의 악, 육감적이고 광란적인 세상 음악의 악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모든 형태의 악, 모든 종류의 악을 버려야 한다.

[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 . . .

바울은 또 말한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평강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평안을 내려주시는 하나님을 의미한다. 평안은 하나님의 나라의 특징이다(14:17). 죄는 불안과 불행을 가져왔으나, 의는 평안과 행복을 가져온다. ‘너희라는 말은 예수 믿고 구원받고 죄사함 받은 너희를 가리킨다. 사람을 거룩케 하시는 일 즉 사람의 구원과 성화의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시고 이루시는 일이다. 성도의 완전한 거룩은 일차적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친히 성도들을 온전히 거룩케 하시기를 기원하였다. 법적인 거룩은 이미 이루어졌으나(10:10), 실제적 거룩이 필요하다. 우리 속에는 아직도 죄성이 있다. 구원받은 성도의 현재의 삶은 성화의 과정이다. 우리는 몸이 영광스럽게 부활하고 변화되어 죄성이 전혀 없는 완전 성화의 상태에 들어갈 때까지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야 한다(고후 7:1).

바울은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존되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한다. 사람은 영만 가진 존재가 아니고 육도 가진 존재이다. 육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고 죄가 나쁜 것이다. ‘영과 혼은 서로 다른 것을 가리키지 않고 같은 말을 반복한 것이다. 성경에서 영과 혼은 같은 것을 가리키는 두 개의 다른 말이며 성경에서 구별 없이 사용된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성도들은 죄 없는 영육의 존재로 나타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완전 성화는 하나님의 구원의 목표이며 우리의 생활 목표이다.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바울은 또 말한다.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우리를 영생으로 부르신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그는 그가 시작하신 구원을 이루실 것이다(1:6). 하나님의 구원은 중도에 실패하는 구원이 아니다. 그는 죄인을 실제로 구원하시는구주이시다. 그는 죄인들의 모든 죄를 법적으로 깨끗케 하실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을 실제적으로도 흠과 점이 없는 거룩한 인격자들이 되게 하신다. 구원의 목표인 완전 성화는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과 변화로 마침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완전 성화를 위해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힘써야 한다.

[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바울은 또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한다. 구원은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복음사역자들에게는 성도들의 기도가 매우 필요하다. 하나님의 일은 성도들의 열심 있는 기도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담임목사와 그의 협력사역자들을 위해, 그들의 설교와 기타 사역을 위해 기도하라.

[26]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바울은 또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고 말한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들이므로 시시때때로 서로 문안해야 한다. ‘거룩하게 입맞춤으로라는 말은 거룩한 사랑으로라는 뜻이다. 우리는 진실하고 깨끗한 사랑의 심정으로 서로 사랑하며 서로 문안해야 한다. 이 세상에는 슬픔과 고난이 많으므로, 우리는 서로 돌아보아 위로하며 격려하고 위하여 기도하고 도와야 할 것이다.

[27-28]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 . . .

바울은 끝으로 말한다.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거룩한]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아멘].성도들은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성경을 들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성도의 의무이다. 성도가 이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면 그는 성도답지 못하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우리 모두가 흠과 점 없이 온전한 삶을 이루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게 되기를 원하신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성경을 열심히 읽고 듣고 배워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이 확고하기를 원하며 완전한 성화를 사모할진대, 우리는 성경을 읽고 성경을 듣기를 힘써야 한다.

19절부터 28절까지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성경말씀과 성령의 감동을 멸시하거나 억제하지 말고 존중하고 그것에 순응하고 복종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모든 형태의 악을 버리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만 취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온전한 성화를 이루어주실 줄 알고 늘 기도하고 의지하며 힘쓰자. 우리가 성실히 행하는 것은 성도로서 당연한 의무이지만, 우리의 구원과 성화는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넷째로, 모든 성도들은 목사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전도와 목회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로, 우리는 거룩한 사랑으로 서로 문안해야 한다. 교회는 서로 사랑하라는 주의 계명을 실천하는 사랑의 모임이 되어야 한다. 여섯째로, 성도들은 성경을 열심히 읽고 듣고 배우고 묵상하고 연구해야 한다. 이것은 성도의 실제적 성화와 온전함을 위해 하나님께서 정하신 은혜의 방법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성도의 엄숙한 의무이다.

[골로새서 성경 좋은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들(골 4:1-18)

 

[골로새서 성경 좋은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들(골 4:1-18)

골로새서 4장에서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세상에서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예수님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이

cdk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