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이사야 10장 강해 설교] “남은 자의 은혜”(사10:20-21)

체데크 2020. 8. 1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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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이사야 10장에서 남은 자의 은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남은 자의 은혜”(사10:20-21)

 

명제: 여호와께 남은 자는 선택받은 백성을 말씀하고 있다.

목적: 남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안에서 은혜를 입은 자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민으로 선택하셔서 모든 나라의 본을 삼으시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셔서 한 민족을 만들어 가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고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의 압제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에 와서 하나님을 10번이나 시험을 하고 송아지 우상을 만드는 악행을 저질러 결국 광야 1세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철저하게 훈련을 받고 자신의 조상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겨 죽는 모습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평강이 오니 다시 가나안 땅의 우상들을 섬기는 악행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계하시고 심판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을 지내면서도 회개하지 않으니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완전히 훼파시키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수르에 의하여 완전히 멸망을 받게 되고 남 유다는 B.C 586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하여 멸망당하고 포로로 끌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소망이 끊어졌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항상 남은 자를 남겨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타락하여 우상으로 돌아갔지만 그중에 하나님께 선택을 받아 회개하고 돌아오는 남은 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남은 자가 바로 하나님께 만세전에 선택을 받아 구원을 얻은 자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모두 타락하여 죄악 된 우상을 섬기지만 남은 자들은 우상을 섬기지 않고 세상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나는 현재 남은 자인가? 아니면 세상을 의지하고 타락한 자인가를 말씀을 통해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10:20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뢰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들을 의뢰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 되게 의지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럼 그 날은 언제를 말씀하고 있습니까? 바로 심판의 날을 상징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날이며 남 유다를 심판하시는 날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날에 모든 사람들은 세상을 의지하여 북이스라엘은 앗수르를 의지하여 나갈 것이고 남 유다는 바벨론을 의지하여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남은 자들은 절대 이런 세상의 힘과 우상을 의지하지 않는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남은 자’ שאר(셰아르 7605 NMS) 나머지, 남은 자,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שאר(샤아르 7604) 남아 있다, 남기다, 따로 하다, 남겨두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종말의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판을 받을 때에 모두 죽는 것이 아니라 남은 자들을 따로 세워 그들의 영혼은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여 뽑은 자들입니다. 이들을 하나님께서 이미 따로 남겨두시고 심판에서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남은 자들입니다. 남은 자들은 자신에게 어떠한 의지도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신들이 잘나서 선택받은 것도 아니고 남겨진 것도 아닙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남게 된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 나도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 안에서 남겨진 자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선택받고 싶어서 선택받아진 것이 아닙니다. 또한 내가 신앙생활을 잘해서 뽑힌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가 임하여 내가 선택받아진 것이며 심판에서 따로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현재 저와 여러분들은 이 말씀을 믿습니까? 내가 하나님께 선택받아진 인생이라는 것을 믿습니까? 그러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은 자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께 남은 자로 선택받은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이 무엇입니까? 자신을 친 자들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앗수르를 더 이상 따르지 않고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우리들은 어떠한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세상의 재력과 권세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할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יסף(야샤프 3254 동사, 히필, 미완료, 남성, 3인칭, 단수) 더하다, 크게 하다, 증가되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 성경에는 번역이 되어 있지 않지만 원문에는 있습니다. 남은 자들이 더 이상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우상을 섬기지 않는 신앙을 가지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 것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남은 자들이 결단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시고 그 마음속에 지금까지 자신들이 살았던 삶을 회개하게 하시고 여호와 신앙이 점점 늘어나 증가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 이러한 결단과 믿음을 주시는 이는 누구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이들은 지금까지 자신의 뜻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선택을 받고 구원을 얻은 후에는 더 이상 자신의 뜻대로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속에 함께 하셔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지금 당장만 결심을 하고 삼일 만에 작심을 깨는 그런 결단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르는 신앙을 가지고 간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미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내가 하는 신앙이라면 얼마 가지 않아서 실패하고 세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을 가지고 가니 남은 자들이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고 따라가는 신앙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나는 어떻습니까? 이스라엘의 남은 자처럼 신앙의 결단을 내렸습니까? 지금도 마지막 종말의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나를 남은 자로 선택하여 주시고 신앙의 결단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의 결단을 무시하고 세상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안에서 주님만을 섬길 것을 확고히 믿고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요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나를 떠나려고 하느냐고 물으실 때에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님 영생의 말씀이 주님께 있는데 우리가 누구에게로 갈 수 있습니까? 라고 신앙의 정조를 지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영생의 말씀이’ ρημα(레마 4487) 말씀, 말,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ρεω(레오 4482) 흐르다, 흘러나오다, 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지금까지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로고스의 문자적인 말씀이 아니라 생명력 있는 레마의 말씀으로 들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영생을 살리는 권세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흘러나와 메마른 심령들을 촉촉이 적셔 주셔서 영혼을 기름지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로고스의 말씀으로는 메마른 심령을 기름지게 만들 수가 없습니다. 생수가 흘러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생의 말씀은 권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이 고난의 복음인 생수가 주님의 입에서 흘러나와 죽었던 영혼들을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현재 나에게 있는데 내가 어디를 가느냐고 베드로는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 말씀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영혼을 살리는 목적이 있습니다. 주님의 입에서 나오신 말씀은 죽었던 영혼을 살리고 메말랐던 심령을 옥토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씀은 영원한 생수가 되어 절대 마르지 않는 것입니다. 현재 나에게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생수가 내 심령에 있습니까? 그러면 나는 마음이 피폐해지지 않습니다. 심령이 메마르지 않습니다. 또한 돌밭과 같은 심령이라도 옥토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의 은혜이며 주권입니다. 그렇다면 영생의 말씀이 여기 있는데 저와 여러분들은 어디로 가시렵니까? 우리는 내 영혼을 살리는 레마의 말씀을 찾았습니다. 진주 장사가 평생 좋은 진주를 찾다가 발견한 것처럼 영혼을 살리는 레마의 말씀을 찾았습니다.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그러니 이 레마의 말씀을 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영생의 말씀을 끝까지 붙잡아야 합니다.

 

‘의지하리니’ שען(샤안 8172 동사, 닢알, 완료, 남성, 3인칭, 단수) 기대다, 눕다, 쉬다, 라는 뜻입니다. 남은 자들은 자신들을 친 자들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진실 되게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의지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께 영원히 기대는 것입니다. 기댄다는 것은 나의 모든 힘을 빼고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기댄다고 하면서도 짝 다리를 집고 기대고 있으면 완전히 기댄 것이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주님께 의지한다고 하면 이것은 완전한 의지가 아닙니다. 완전한 의지는 내가 잠자리에서 잠을 자듯이 힘을 빼고 누워서 쉬는 것이 완전한 의지입니다.

 

혹시 내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힘이 빡 들어가 있는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면서도 내 힘이 들어가고 입으로는 주님께 의탁한다고 말하고 있다면 이것은 가식입니다. 완전한 의지가 아닙니다. 만약에 이런 상황에서 일이 해결되면 자신의 공의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완전히 의탁하여 해결되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의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남은 자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자신의 힘으로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어려운 환경에서도 쉼을 얻을 수 있고 고난 중에도 주님을 의지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닢알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구원을 얻은 것도 내 힘으로 한 것이 아니고 주님의 힘으로 되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은 자로 선택받은 것도 주님의 주권이며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것도 주님의 주권 때문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기도할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은혜이며 내 마음에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도 주님이 마음을 주관하여 주셔서 가능하다는 것을 이 시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한 번 주님을 의지하고 믿으면 이 믿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빼앗기지도 않습니다.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불안해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내가 선택받은 남은 자로 있지만 혹시 내가 내일은 이 자리에서 탈락이 되어 심판을 받지는 않을까? 고민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의 모습을 보니 그렇습니다. 나의 행동은 모두가 죄악 된 행동인데 어떻게 남은 자로서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 번 선택받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끌고 가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한 것을 놓치지 않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10:21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야곱의 선택받은 남은 자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돌아올’ καταλειπω(카탈레이포 2641 동사, 직설법, 과거, 수동태, 단수, 1인칭) 떠나다, 버리다, 남겨두다,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κατα(카타 2596) 대항하여, ~을 향하여, 라는 뜻과 λειπω(레이포 3007) 부족하다, 결핍되다, 헐벗다, 라는 뜻의 합성어입니다. 남은 자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이사야는 예언하고 있습니다. 남은 자들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지금까지 버려졌고 세상에서 고통을 당하던 장소에서 남겨지게 되었지만 이제부터는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됩니다. 자신의 자리를 완전히 떠나게 되고 현재의 장소를 버리고 지금까지 하나님을 대항하여 살았던 인생을 우상을 대적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빠져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남은 자들이 우상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살았더니 육적으로는 부족한 인생이 되어 영적으로 곤핍하고 결핍하여 항상 헐벗는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영혼의 주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영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면 이렇게 영적으로 곤핍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심령에 만족함이 없고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지며 항상 헐벗고 추한 인생으로 끝나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지 못한 자의 삶입니다. 그런데 남은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돌아올 것이 현실적으로 실제 일어날 입니다. 현재 이사야 선지자는 앞으로 될 일을 말씀하고 있지만 남은 자들은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을 얻고 남은 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사실이 실제로 내 마음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남은 자로 선택을 받은 것은 내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잘해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잘 섬겨서도 아닙니다. 이들은 항상 하나님께 실망을 끼쳤던 인생들입니다. 그런데도 남은 자들을 따로 선택하신 것은 이미 만세전에 구원 얻기로 작정된 자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을 구원하시기로 이미 작정하여 계획하셨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나도 나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은 나를 남은 자로 구원하시기 위하여 만세전에 계획하시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것도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남은 자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는 절대 남은 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마지막 때에 심판을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도 바로 내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1인칭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실 때에 개인적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구원도 개인의 구원입니다. 남은 자들을 선택하시는 것도 개인구원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파멸될 때에 모두가 죽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남은 자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심판하시기 전에 남은 자들을 선택하여 천국 곡간에 넣으시고 나머지는 불사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 곡간에 들어가지 못하면 심판을 받아 끝장나는 것입니다. 지옥의 불 못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세전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아 남은 자로 선택함을 지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며 보혈의 힘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남은 자로 선택함을 받으려고 열심히 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불쌍히 여기사 많은 사람들 중에 선택하여 멸망받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까? 이 보다 더 감사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영원히 지옥의 불 못으로 던지지 아니하시고 영원한 천국에서 남은 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신 주님께 오늘도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오직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항상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면서 주님의 기쁨과 즐거움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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