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원어 설교

[성경 인물 솔로몬 설교문] “율법의 아들과 복음의 아들”(삼하11:26-27; 12:24-25)

체데크 2020. 6. 20.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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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성경 인물 솔로몬 설교문 중에서 다윗과 밧세바를 통해서 나온 이름도 없는 아들과 솔로몬을 비교하면서 율법과 복음의 아들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율법의 아들과 복음의 아들”(삼하11:26-27; 12:24-25)

 

명제: 밧세바의 첫째 아들은 율법의 아들을 상징하고 둘째 아들인 솔로몬은 복음의 아들을 상징한다.

목적: 나는 밧세바의 첫째와 같은 아들의 신앙인가? 아니면 둘째와 같은 신앙인가?

 

다윗은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땅을 점령하고 누리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다윗과 솔로몬 때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했습니다. 다윗에게 마지막 정복지인 암몬을 정복하기 위하여 요압 장군을 랍바 성으로 보내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은 왕궁을 어슬렁거리다가 밧세바가 목욕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밧세바를 자신의 침실로 데려와 동침을 하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 많은 사람들은 밧세바는 피해자고 다윗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삼하11:4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여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다윗은 전령을 밧세바에게 보내 자신에게로 데려오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가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다윗은 그 여자와 동침을 하고 여자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데려오게 하여’ (λαμβανω람바노 2983) 취하다, 가지다, 잡다, 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왕궁 지붕을 걸어 다니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왕궁의 지붕이 높고 여인의 집은 낮기 때문입니다. 보통 고대근동의 집들은 마당이 넓었습니다. 그래서 여인들이 종종 마당에서 목욕을 많이 했습니다. 이 모습을 다윗이 본 것입니다. 다윗이 이 여인을 보고 마음에 품어 전령을 보내서 여인을 자신의 침실로 데리고 온 것입니다. 자신의 것이 아닌데 자신의 것으로 취한 것입니다. 우리아의 아내를 자신의 것으로 취하여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좋지 않게 보셨습니다.

이렇게 다윗이 밧세바를 자신의 침실로 데려온 사건이 실제로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밧세바가 목욕하는 장면을 한 번만 목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거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많이 목격을 하였고 다윗의 마음에 밧세바를 품어 자신의 여자로 삼으려고 계속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되매 밧세바를 자신의 여인으로 취한 것입니다. 다윗은 밧세바가 목욕하는 장면을 한 번만 보고 전령을 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동침하매’ (κοιμαω코이마오 2837) 잠들다, 잠자다, 라는 뜻입니다. 다윗과 밧세바는 서로 동침하여 잠이 들었습니다. 다윗과 밧세바는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동침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과 밧세바가 왕궁의 침실에서 잠을 잔 사건이 실제로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다윗과 밧세바가 같이 잠을 잤는데 불러온 것은 다윗이지만 여기에서 밧세바의 계획도 있다는 것을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거시제를 통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데 다윗만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라 밧세바도 왕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을 유혹하기 위하여 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남자만 계획을 세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여인도 계획을 세웠을 때에 동침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서로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왕의 권한으로 밧세바를 데려왔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잘못하면 다윗이 수치를 당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밧세바가 묵인했기 때문에 다윗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קדש카다쉬 6942) 성별하다, 예비하다, 준비하다, 라는 뜻입니다. 밧세바는 자신의 몸을 성별 하여 미리 준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준비한 것입니다. 자신의 몸을 예비하고 다윗을 맞이할 준비를 한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다윗도 이것을 알고 밧세바를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밧세바는 자신의 몸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면서 준비하고 다윗을 맞이할 것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면서 평상시와 똑같이 마당에서 목욕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임신의 날짜가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가르쳐 주고 싶은 것입니다. 밧세바는 그 날에 다윗과 동침하고 즉시 임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자신이 임신을 했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삼하11:5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밧세바가 임신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임신하였다는 것입니다.

 

‘말하여’ (נגד나가드 5046) 고발하다, 선포하다, 일러주다, 라는 뜻입니다. 밧세바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다윗에게 즉시로 일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임신한 것을 외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자신이 임신한 것을 모른 체한다면 만천하에 고발할 것이라는 압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스스로 다윗을 압박하기 위하여 자신의 임신 사실을 즉시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아무 때나 관계를 맺는다고 임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임신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밧세바는 계획적으로 자신의 몸을 준비하면서 다윗을 유혹하여 임신을 했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다윗의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라 밧세바도 이미 다윗에게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모든 정황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 때문에 다윗은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아를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하여 사람을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았습니다. 우리아가 죽은 후에 다윗은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삼고 있습니다.

 

삼하11:27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우리아의 장례를 마치자 다윗이 사람을 보내 여인을 왕궁으로 데려오고 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행위가 여호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낳은 아들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아들입니다. 결국 죄를 짓고 낳은 아들은 죽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 아들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은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삼하12:14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원수가 크게 비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이 낳은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이다 하고

 

다윗이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단이 선포하는데 간음하여 낳은 아들은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였습니다. 다윗은 이 예언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자신이 율법아래에 있으니 결국 자신의 아들도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미 많은 아내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밧세바를 임의로 취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여인을 취함으로 밧세바의 첫 번째 아들이 죽는 것입니다. 이 아들은 바로 율법의 아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갈5: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하나님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자들은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이며 은혜에서 멀어진 자라는 것입니다. 밧세바의 첫째 아들은 결국 율법 아래에 있는 자라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다윗과 밧세바가 간음함으로 율법을 어긴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결국 영원히 죽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절대 의로워 질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끊어지고’ (καταργεω카타르게오 2673) 무효하게 하다, 멸망 받다, 제거되다, 라는 뜻입니다. 율법 안에서 자신 스스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의를 무효화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율법의 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은 모두 구원에서 제거되어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은 구원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진 사실이 실제로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구원을 받지 못하고 심판받을 것이 이미 선택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신 스스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지만 이것은 모두가 무효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이 어떻게든 구원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 곁에 있으려고 하지만 결국은 끊어지게 됩니다. 그 이유가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는 절대 예수그리스도 곁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을 믿음으로 주님 곁에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아들은 선택받지 못하고 결국은 반드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삼하12:15-16 나단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아의 아내가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께서 치시매 심히 앓는지라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다윗이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나단이 예언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다윗에게 낳은 아이를 여호와 하나님께서 치셨습니다. 이 아들은 심히 큰 병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 상황이 되자 다윗은 이 아이를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기 시작합니다. 다윗이 금식하고 밤새도록 땅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입니다.

‘간구하되’ (בקש바카쉬 1245) 구하다, 간구하다, 요구하다, 힘쓰다, 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하여 낳은 아들을 하나님이 치시자 식음을 전폐하고 하나님께 매달리기 시작합니다. 이 아들을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아들의 생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온힘을 다해서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들이 병이 들자 자신의 힘으로 매달려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자신이 죽을 지경에 이를 때까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매달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의 아들을 살리려고 율법의 자신의 의의 힘으로 매달리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은 이루어주시지 않습니다. 율법의 의로는 절대 생명을 살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의 행위로는 절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습니다. 율법으로는 죄만 깨달을 뿐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율법의 의로 열심히 기도하고 간구하여 부르짖지만 이것은 하나님 앞에 의로운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만 깨달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아래에 있는 자들은 결국 하나님이 치시니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다윗이 기도했지만 이 아들은 7일째에 죽게 됩니다. 7일 만에 죽었다는 것은 완전한 죽음을 의미합니다. 숫자적으로 7은 완전수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은 완전히 죽었다는 것을 의미해 주는 것입니다.

 

그럼 나의 신앙은 어떠한 신앙입니까? 율법 아래에 있는 행위의 신앙입니까? 자신의 행위로는 절대 생명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율법의 아들은 반드시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간음하여 탄생된 아들은 이름도 성경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의 이름도 기억하기 싫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내가 율법의 아들의 신앙을 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나의 이름조차 거론하기 싫은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갈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면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이 헛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헛되게 돌아가신 것입니다. 이런 자들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지도 않고 말씀하시기조차 싫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다윗이 율법을 어겨 죄를 짓고 태어난 아이의 이름은 성경에 거론하지도 않고 죽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와 같은 율법의 아들의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은 나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윗이 열심히 금식하면서 기도를 했지만 결국 아들은 죽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금식을 접고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이 밧세바에게 들어와 동침을 하고 아들을 낳게 됩니다.

 

삼하12:24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에게 들어가 그와 동침하였더니 그가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를 사랑하사

 

다윗이 그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동침하여 아들을 낳게 됩니다. 이 아들의 이름이 솔로몬입니다. 이 아들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아들입니다. 그런데 밧세바가 낳은 아들 중에 솔로몬은 네 번째 아들입니다.

 

대상3:5 예루살렘에서 그가 낳은 아들들은 이러하니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네 사람은 다 암미엘의 딸 밧수아의 소생이요

밧세바가 낳은 아들 중에 솔로몬은 막내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기록하고 있는 것은 그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이라는 것을 말씀하기 위하여 죽은 아들과 솔로몬을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율법의 죄악 중에 낳은 아들은 이름도 없지만 하나님이 주신 아들의 이름은 솔로몬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이 아들은 복음의 아들이라는 것을 의미해 주고 있습니다. 밧세바라는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첫 번째 아들을 않을 때는 이름도 거론하지 않다가 솔로몬을 낳을 때는 밧세바라고 거론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아들을 낳았을 때 하나님이 밧세바를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솔로몬’ (שלמה쉘로모 8010) 솔로몬, 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שלום샬롬 7965) 평안한, 화평한, 화목한, 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탄생한 솔로몬은 복음의 아들을 상징합니다. 이 아들을 통해서 다윗과 밧세바 사이가 좋아졌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얻어 영혼이 평안함을 누리면서 화목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롬3: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솔로몬과 같은 복음의 아들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자입니다. 이런 자들은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의 이름을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고 복음 아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저와 여러분들은 어디 아래에 있습니까? 율법아래에 있습니까? 아니면 복음 아래에 있습니까? 말씀을 통하여 스스로 깨닫기를 바랍니다.

 

삼하12:25 선지자 나단을 보내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께서 사랑하셨기 때문이더라

 

하나님께서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하고 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 책망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나단 선지자를 보내 솔로몬의 이름을 지어주시고 있습니다. 솔로몬의 이름을 여디디야로 지어주시는 것입니다.

 

‘여디디야’ (ידידיה예디드야 3041) 여디디야, 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여호와라는 단어와 사랑을 받은, 이라는 뜻이 합성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디디야는 여호와의 기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신 솔로몬은 하나님의 기쁨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복음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께 사랑을 입은 자들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께서 직접 이름을 지어주시고 이름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은 자가 이긴 자입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세마포 옷을 입고 깨끗해진 것입니다. 모든 원죄가 사라진 자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생명 책에 기록해 놓으시고 절대 지우거나 삭제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솔로몬과 같은 자입니다. 내가 이 시간 이와 같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을 받고 모든 죄가 씻겨졌으며 하나님이 제일 사랑하는 자이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자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간혹 실수를 하여 하나님 앞에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하나님은 나의 기쁨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계속해서 잘하지는 못했습니다. 우상을 섬길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솔로몬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었지만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께 죄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하여 실수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복음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원죄가 깨끗이 씻겨 졌기 때문에 생명 책에서 삭제하지 않습니다. 자 범죄를 계속해서 지으면 징계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저와 여러분들은 어떤 아들입니까? 이름도 없는 율법의 아들입니까? 아니면 솔로몬처럼 이름도 있고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사랑받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낳은 자인 복음의 아들입니까? 이 시간 복음의 아들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생명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습니다. 복음의 아들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입니다.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세상에 나가 복음의 아들로서 당당하게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벧에돔 설교] “오벧에돔이 받은 복”(삼하6:10-11)

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을 방문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오벧에돔의 집에 법궤가 들어감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았던 사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벧에돔이 받은 복”(삼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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