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원어 설교

[마태복음 21장 설교문]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의 차이점(마 21:27-32)

체데크 2020. 9. 1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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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마태복음 21장 설교문 중에서 큰아들과 작은 아들의 차이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의 차이점”(마 21:27-32)

 

명제 : 큰 아들은 율법주의자이고 작은 아들은 복음에 있는 자이다.

목적 : 큰 아들은 행위로 구원 얻으려고 하고 작은 아들은 믿음으로 얻으려고 한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백성들에게 천국 복음을 가르칠 때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께로 와서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이기 때문에 백성들을 구원시키고자 복음을 가르치셨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의 권위가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세례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대답하지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세례가 하늘로부터 왔다고 하면 왜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고 사람으로부터 왔다고 하면 자신들이 세례 요한의 세례를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님도 나의 이 권위가 어디에서 오는지 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해도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길을 평탄케 하기 위해서 온 세례요한의 세례도 인정하지 않는데 주님이 하나님이라고 말하면 율법주의자들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이 주님의 길을 평탄케 하여 길을 인도하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많은 사람이 주의 길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율법에 빠져 아직도 구원받지 못하고 헤매는 영혼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여 오직 믿음으로 만이 구원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의 권위가 어디에서 오는지는 말씀하지 않고 두 아들의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큰아들의 신앙을 하고 있는지 작은아들의 신앙을 하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마21:27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세례 요한의 세례를 부인하자 주님도 그들에게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는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주님을 전파하는 세례 요한의 세례를 부정하는 자들에게 아무리 복음을 전해주어도 듣지 않습니다. 소 귀에 경을 읽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먼저 엘리야가 오면 주님이 오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말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여호와 하나님은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우리에게 보내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해 줄 사명을 가진 엘리야를 보내주십니다.

마11: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주님은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온 사람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가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여 주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한 사람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엘리야가 왔다는 것을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을 인정하는 순간 주님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군가 구원의 십자가 복음을 전파해 주었기 때문에 내가 주님을 믿고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율법주의자는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온 엘리야와 같은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자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주님은 율법주의자들에게 큰아들과 작은아들의 비유로 말씀합니다.

마21: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주님은 대제사장들에게 말씀하면서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고 묻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말하기를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말했습니다.

‘일하라’ εργαζομαι(에르가조마이 2038동사, 명령법, 현재, 중수디포, 단수, 2인칭) 일하다, 생산하다라는 뜻입니다. 아버지는 큰아들에게 자신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명령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아버지의 말을 듣고 반드시 포도원에 가서 일하여 포도 열매가 많이 열릴 수 있도록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합니다. 현재 시제는 아버지가 지금 바로 가서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중수디포는 아버지는 큰아들에게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을 하는데 아버지가 일할 거리를 이미 준비해 놓고 그곳에서 일을 하여 아버지의 기쁨에 들어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포도원과 같은 교회에 들어와서 할 일을 하라고 말씀합니다. 교회에서 할 일을 이미 준비해 놓으시고 그 일을 하면 주님의 기쁨 안에 들어오게 됩니다.

마21:29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여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아버지의 말을 들은 큰아들의 반응은 아주 좋습니다. 아버지여 가겠나이다 말하더니 행동으로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말로는 모든 것을 다 했지만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여’ κυριος(퀴리오스 2962 명사, 호격, 남성, 단수) 주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맏아들은 아버지를 주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보통 아버지라는 단어는 πατηρ(파테르 3962)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맏아들은 아버지에게 κυριος(퀴리오스)주인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주인과 종의 관계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지 아니하고’ απερχομαι(아페르코마이 565 동사, 직설법, 과거, 능동태, 단수, 3인칭) 가버리다, 떠나가다, 물러가다라는 뜻입니다. 큰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바로 가겠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자신의 일에 빠져 행동은 아버지의 말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하고 있습니다. 포도원으로부터 저 멀리 떠나가고 마음도 아버지의 말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 가버렸습니다. 직설법은 맏아들이 실제로 포도원에 가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과거 시제는 맏아들은 아버지의 말에 현재 가겠다고 반응은 했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아버지의 말씀대로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었던 것을 의미합니다.

율법주의자는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말씀해도 그들은 앞에서는 예 맞습니다.라고 말은 하면서 마음에서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행위의 의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맏아들과 같은 행동을 하는 자들입니다. 이제 둘째 아들의 반응을 보겠습니다.

마21: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가서 큰 아들에게 말했던 것처럼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말합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 앞에서 싫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 뉘우치고 포도원에 가서 일을 했습니다.

‘뉘우치고’ μεταμελλομαι(메타멜로마이 3338 동사, 분사, 과거, 수동디포, 주격, 남성, 단수) 마음을 바꾸다, 후회하다라는 뜻입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을 받았지만 그 앞에서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마음에 아버지의 명령을 거절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함으로 마음을 바꾸어 먹었습니다.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기로 마음을 먹고 포도원으로 갔습니다. 과거 시제를 쓰고 있는 것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마음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 정해져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 아들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수동디포는 자신이 뉘우친 것처럼 보이지만 아버지의 말이 계속적으로 생각이 나서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은혜가 그에게 임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원죄의 죄인입니다. 둘째 아들처럼 포도원과 같은 교회에 들어가서 구원의 은혜를 받으라고 했지만 거부하고 세상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거부할 수 없는 은혜가 임하여 포도원으로 들어와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마21:31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뇨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주님은 대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장로들에게 말합니다.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했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둘째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뜻이 무엇일까요?

요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아버지의 뜻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일이며 뜻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자신의 행위로 아버지 앞에 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아버지의πατηρ(파테르 3962 명사, 소유격, 남성, 단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했냐고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큰아들이나 작은아들이나 모두가 아버지를 κυριος(퀴리오스) 주인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πατηρ(파테르) 아버지 안에 들어온 자는 둘째 아들입니다. 소유격을 쓰고 있는 것은 주인 안에 소유된 자가 아니라 진정한 아버지 안에 들어온 자는 둘째 아들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큰아들은 계속해서 주인과 종의 관계 속에 있기 때문에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자입니다. 작은아들은 회개하고 돌아와서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회복한 아들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이런 자가 창녀와 세리들이라는 것을 주님은 말씀합니다.

마21: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주님은 율법주의자들에게 말씀합니다.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는데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리와 창녀는 세례 요한이 전해준 복음을 믿었습니다. 율법주의자는 입으로는 믿는다고 말했지만 보고도 끝내 회개하지 않고 믿지 않았습니다. 율법주의자는 입으로는 거룩한 신앙입니다.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곳에는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드러내는 곳에는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는 이 땅에서 원죄의 삶을 살다가도 복음을 들었을 때 믿고 회개하여 주님께 돌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복음을 전해주어도 믿지 않고 회개하지도 않고 주님께로 돌아오지도 않습니다. 결국 율법주의자들은 원죄의 죄인으로 살다가 영원한 지옥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창녀와 세리와 같은 인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자였고 부정한 자였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먼저 선택을 받은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주님은 이런 자들에게 먼저 복음을 가지고 가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했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녀와 세리들에게 복음이 갔습니다. 우리는 큰아들의 율법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입으로 최고의 거룩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척하면서 뒤로 가서는 자신 멋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이런 신앙은 진노받게 됩니다. 작은아들의 신앙은 앞에서는 배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흘러 하나님께서 불가항력적인 은혜를 주심으로 복음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들어 주셔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제 우리는 작은아들과 같이 회개하여 주님 안에 있는 자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포도원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됩니다. 나의 행위의 의로 구원 얻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아버지가 원하는 일을 하면 됩니다. 구원받은 자는 현재 하나님 아버지가 하라는 것을 열심히 하면 됩니다. 내 생각과 내 뜻을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명령한 것이 급하니 이것을 하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책임지시고 함께 해주십니다. 이제 하나님의 뜻을 먼저 수행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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