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도 복음 빵집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13장 강해 설교문 중에서 씨 뿌리는 비유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것은 복음의 씨가 마음 밭에 떨어져 열매를 맺어 수확을 얻은 것을 말합니다.
씨 뿌리는 비유를 깨닫는 자(마 13:18-23)
♣명제: 씨는 천국의 복음 말씀을 상징하고 있다.
♣목적: 구원받은 백성들은 천국의 십자가 복음을 깨달은 자이다.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천국의 비밀을 아무나 듣고 깨닫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당시 율법주의자들은 천국복음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을 모함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들에게 십자가 천국복음을 전해주어도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에게는 허락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유로 천국복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음으로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구원받은 백성들은 천국복음의 진주를 깨닫고 가치를 안자들입니다. 진주의 가치를 모르면 하나의 돌로만 보게 됩니다. 그래서 무가치하며 나에게 쓸모가 없는 돌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축자들이 쓸모없다고 버린 돌이 모퉁이 돌이 되어 건물을 세우는데 기초 돌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모퉁이 돌이 되어 주셨습니다. 나에게 진주와 같은 보석이 되어주신 분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깨닫고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받았으며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씨가 어디에 떨어졌습니까? 길가에 떨어졌습니다.
마13:19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려진 자요
예수님께서는 길가에 떨어진 씨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시고 있는 것은 그 당시에 이스라엘에서 농사를 짓기 위하여 농부가 씨를 뿌리게 됩니다. 이 모습을 보고 예수님은 천국의 복음의 씨앗으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의 십자가 복음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악한 사탄이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을 빼앗아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심령의 밭이 길 가에 뿌려진 씨앗입니다.
‘깨닫지 못할 때는’ συνιημι(쉬니에미 4920) 깨닫다, 이해하다, 지혜가 있다, 라는 뜻입니다. 길가에 뿌려진 씨앗은 제대로 씨앗이 발아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뿌리가 내리기도 전에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천국복음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구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여 전해주어도 왜 예수님이 구약에 있느냐고 말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천국복음이 심령에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이미 새들이 와서 먹어버린 것처럼 복음 자체가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지혜가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복음은 내가 깨닫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 주실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언제입니까? 지금 복음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시제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을 전해준다고 해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깨닫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세상의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것이 아니라 육적인 것을 좋아하고 육적인 것만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소유격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빼앗나니’ άρπαζω(하르파조 726) 훔치다, 억지로 붙들다, 끌어내다, 라는 뜻입니다.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땅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새들이 와서 훔치듯이 잡아채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국복음이 심령에 박히지 않으니 사탄이 와서 억지로 붙들고 빼앗아 가버리는 것입니다. 귀한 진주를 도둑이 훔쳐가는 것처럼 관리를 하지 못함으로 빼앗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국복음을 귀하게 보지 않기 때문에 결국 빼앗길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지키고 싶다고 해도 사탄은 억지로 끌고 가버리는 것입니다. 사탄은 천국복음이 사람들의 심령에 있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령에 박히기 전에 억지로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길가와 같은 심령에 천국복음이 떨어진 자들이 사탄에게 복음을 빼앗긴 일이 실제로 있습니다. 직설법을 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이 천국복음을 듣자마자 빼앗기는 것입니다. 예배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듣지만 이 말씀이 내 심령에 박혀 구원의 열매까지 가기도 전에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뿌려진 자요’ σπειρω(스페이로 4687) 뿌리다, 심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길가와 같은 심령에 천국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심었습니다. 그런데 이 심령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새가 와서 씨앗을 먹어버린 것처럼 사탄이 와서 귀한 복음의 씨앗을 빼앗아 가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길가와 같은 심령의 밭에 씨가 뿌려진 자들은 이미 십자가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로 선택되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과거 시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복음을 깨닫지 못하는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천국복음의 씨앗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 뿌려지지만 깨닫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깨닫는 지혜를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동태를 보면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이와 같은 자가 아니라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두 번째 씨가 어디에 떨어졌습니까? 돌밭에 떨어졌습니다.
마13:20-21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씨앗이 돌밭에 뿌려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뜨거운 태양에 이기지 못하고 씨앗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죽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천국복음을 받지만 환난이나 박해가 임할 때에 실족하여 넘어지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듣고’ ακουω(아쿠오 191) 듣다, 들리다, 이해하다, 깨닫다, 라는 뜻입니다. 돌밭과 같은 심령에 천국복음이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귀에 들리고 이해가 되고 깨달았습니다. 너무나 마음이 기쁜 것입니다. 십자가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지금 현재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잠시 이렇게 천국의 복음 말씀을 듣고 기뻐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기쁨으로 받되’ λαμβανω(람바노 2983) 취하다, 가져오다, 빼앗다, 라는 뜻입니다. 돌밭에 천국복음이 떨어진 사람들은 복음 말씀을 듣고 기쁨을 즉시 취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자신의 것으로 확실하게 믿었다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구원을 쟁취한 것처럼 빼앗아 절대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단어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영접이라는 단어가 λαμβανω(람바노)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실제로 천국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들은 실족하고 넘어질까요? 그 이유가 지금 현재에 내가 영접한 것입니다. 기쁨으로 받는다는 것이 현재시제를 쓰고 있습니다. 잠시 잠깐 자신들이 영접함으로 절대 예수님을 빼앗기지 않는다고 생각은 하지만 지금 당장 믿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은 자들은 영접할 때에 과거 시제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것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똑같은 영접이지만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의 영접은 이미 만세전에 하나님께서 자녀로 선택하셨기 때문에 어려움이나 환난이나 핍박이 와도 그 믿음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돌밭에 복음이 떨어진 자들은 현재 자신이 믿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권이 자신에게 있기 때문에 환난이나 핍박이 오면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구원받았다고 착각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녀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넘어지는 자요’ σκανδαλιζω(스칸달리조 4624) 걸리게 하다, 넘어지게 하다, 범죄 하다, 배척하다, 라는 뜻입니다. 돌밭에 천국복음이 떨어진 자들은 잠시 열정이 있고 주님을 믿고 기쁨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이것도 잠시라는 것입니다. 육체의 환난이나 박해가 임하면 죄를 짓고 예수님을 욕하면서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고 결국은 실족하여 일어서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 실제로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욕심과 사리사욕을 위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고 떠들어 대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구원받은 자가 아닙니다. 현재 자신의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기 자신이 실족하여 구원에서 넘어지기 싫어도 넘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과 여건이 오는 것입니다. 육체의 사업이 망하니 예수님을 욕하고 떠나는 자들이 있습니다. 사업이 잘되고 자녀가 잘될 때에는 예수님을 제일 잘 믿는 것처럼 교회에 충성 봉사하다가 사업이 기울어지고 자녀들의 문제가 발생하여 풀어지지 않으면 믿음은 사라지고 예수님을 욕하고 하나님께 불평만 늘어놓은 신앙 자들입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이 천국복음의 씨앗이 돌밭에 떨어진 자들입니다.
세 번째 씨가 어디에 떨어졌습니까? 가시떨기에 떨어졌습니다.
마13:22 가시 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씨앗이 가시 떨기에 뿌려졌습니다. 이것은 말씀을 듣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서 결실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말씀이 막혀’ συμπνιγω(쉼프니고 4846) 숨 막히게 하다, 질식시키다, 가시떨기에 천국복음의 말씀이 떨어진 사람은 말씀을 듣지만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세상의 염려가 마음에 가득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재물에 욕심이 많아 늘 유혹에 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주신다고 하시면서 내일 염려는 내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늘 염려하다 보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숨 막히게 하여 결실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없고 항상 돈 생각과 육체의 번민에 하나님의 말씀을 질식시켜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결국 구원과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말씀이 질식되어 심령에서 피어나지 못한 일이 있습니다. 직설법을 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언제 결실하지 못하냐면 지금 현재 결실치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가시떨기에 씨앗이 떨어진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항상 육체의 고통과 고난만 생각하다가 예수님과는 멀어진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이러한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됩니다. 모든 염려와 번민과 재물의 유혹은 모두 주님께 맡기고 내 심령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천국복음의 씨앗이 발아되어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 씨가 어디에 떨어졌습니까?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마13: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마지막 씨앗은 좋은 땅에 뿌려졌습니다. 이 땅과 같은 사람은 천국복음의 말씀을 듣고 즉시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심령에서 발아하여 열매를 맺는데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고 있는 것입니다.
‘뿌려졌다는’ σπειρω(스페이로 4687) 뿌리다, 심다, 라는 뜻입니다. 좋은 땅에 천국복음이 떨어진 것은 이미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씨앗이 뿌려진 밭에는 과거 시제를 쓰고 있습니다.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천국복음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밭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의 심령이 올바르면 많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시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결실을 맺을 것과 맺지 않을 것을 구분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돌밭과 같은 곳에서도 얼마든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분이며 가시밭과 같은 곳에서도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좋은 땅에서만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땅에서만 열매를 맺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내가 돌밭에 아무리 흙을 더 갔다 붓는다고 해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복음을 통하여 구원의 열매를 맺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수동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밭만 좋으면 얼마든지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밭이 아무리 좋아도 씨앗이 떨어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입니다. 천국복음이 떨어지지 않으면 밭이 아무리 좋아도 절대 구원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가 천국복음을 듣고 깨닫고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나를 좋은 땅으로 선택하여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 잘났다고 자랑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고전3:4-7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서로 파를 나누어 싸우고 있습니다. 자신은 바울에게서 복음을 들었으니 바울파다 나는 아볼로에게 들었으니 아볼로파다, 라고 싸울 때에 바울은 강력하게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지만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심은 사람이나 물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내가 길가 밭이다, 돌밭이다. 가시밭이다, 나는 옥토 밭이다,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천국복음의 씨앗을 사역자들이 던져준 것뿐이지 오직 자라게 하셔서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이는 성삼위일체 하나님 한 분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돌밭이라고 하더라도 그 속에서도 구원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능력자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셨느냐 아니면 선택하지 않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길가 밭과 같고 돌밭과 같고 가시밭과 같은 삶을 살고 있지만 내가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면 반드시 옥토 밭을 만들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내게 하시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의 행동과 삶을 통하여 나는 구원받지 못한 자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나의 행동이 사람이 보기에 돌밭과 같을 수 있고 가시밭과 같을 수 있으며 길가와 같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셨다는 것을 믿고 나가면 반드시 좋은 땅에 씨앗이 떨어진 것처럼 결실을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나의 마음 밭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내 마음 밭을 바라보면 실망할 것밖에 없습니다. 내 마음 밭을 옥토 밭으로 만들어 복음의 씨앗을 뿌려주시고 결실하게 해 주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은 나를 한 번도 실망시키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저와 여러분들은 밭을 보지 말고 밭의 주인을 바라보시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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