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아가서 설교문 중에서 주님과의 은밀한 사랑에 동참하라는 말씀을 알아보겠습니다.
“주님과의 은밀한 사랑에 동참하라”(아1:12-14)
● 명제 :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은 진실된 사랑이었다.
● 목적 : 주님과 나와의 사랑은 구원받은 거듭난 사랑이다.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 노래입니다. 솔로몬 주변에는 많은 여인이 있었지만 외모로도 별 볼 일 없는 술람미 여인을 찾아가 사랑하게 됩니다. 아가서는 메길로트라고 하는 다섯 두루마리에 속한 책입니다. 유대인들은 아가서를 유월절에 낭독했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된 날입니다. 이런 절기에 아가서를 낭독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유월절은 어린양의 피로 대속을 받아 구원받은 날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원죄에서 죽었던 나를 살려주시고 해방시켜 주신 날입니다. 이럴 때 나는 아가서를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은 아가페적 사랑으로 자신의 몸이 죽고 나를 영원히 살린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이 세상에서 남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있지만 육체만 살릴 뿐입니다. 영원히 죽어야 할 영혼을 살릴 수는 없습니다.
주님은 영원히 죽어야 할 인생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영원히 진노받을 인생을 위해서 죽음으로 영원히 생명을 얻고 살아나게 했습니다. 이것이 헌신적인 사랑입니다. 우리는 유월 절기를 통해서 어린양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아야 하고 아가서를 읽으면서 주님의 사랑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영원한 신랑이 되고 나는 영원한 주님의 신부라는 사실을 내가 알아야 합니다.
아1:12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뿜어냈구나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의 모습을 보면서 말합니다.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뿜어냈다고 말합니다. 솔로몬 왕이 침상에 앉아 있을 때라는 것은 연회를 의미합니다. 연회 석상에 둘러앉은 것을 말합니다. 그때 술람미 여인은 나도 기름을 가지고 솔로몬 왕에게 뿌린 것을 말합니다. 나도 기름은 히말라야 산이 원산지입니다. 주로 남인도 지방에서 자라며 나도 향유는 주로 나무의 줄기나 뿌리에서 채집되며 병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뿌려서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서 깨닫는 것은 주님께 향유 옥합을 깬 마리아의 신앙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요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를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었습니다. 그랬더니 향유 냄새가 집안에 가득했습니다. 가장 값진 것을 마리아는 주님께 드렸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생명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어찌 보면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린다고 해도 아깝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인생을 살지 못합니다. 입술로는 나의 전부를 바쳐도 아깝지 않다고 말하지만 그대로 실천하지 못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몸소 실천해 주셨습니다. 나를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도 아깝지 않다는 것을 십자가에서 보여주셨습니다. 이제부터 우리의 신앙도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아1:13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을 향하여 말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라고 말합니다. 히브리 여인들은 향낭을 가슴에 매달고 다녔습니다. 몰약은 시체 방부제용으로도 사용했습니다. 썩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술람미 여인이 몰약 향주머니를 가지고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향기를 냈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그럴 때 영적 타락으로 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영혼이 타락하면 썩은 냄새가 진동하게 됩니다. 몰약과 같은 복음의 말씀이 있으면 썩은 신앙으로 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고후2:15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우리는 주님의 신부로서 구원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몰약 향주머니를 외출할 때 항상 가슴에 지니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 나갈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향낭을 가슴에 품고 나가야 합니다. 향낭이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좋은 향기가 뿜어져 나옵니다.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 가면 향기는 더욱 힘을 발휘합니다. 많은 사람이 좋은 향기가 나오는 곳으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향기를 내뿜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것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신부가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뿜는 것입니다.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썩은 냄새만 진동하게 만듭니다. 주님의 신부는 오직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 전하면 됩니다.
아1:14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 왕을 향하여 말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라고 말합니다. 엔게디는 ‘염소 새끼의 샘’이라는 뜻입니다. 이곳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숨었던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엔게디 포도원은 열매가 있는 곳입니다. 포도원은 가장 귀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이 자신에게는 가장 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솔로몬은 고벨화 송이라고 말합니다. 고벨화는 כפר(코페르 3724) 몸값, 속전, 역청이라는 뜻입니다. 고벨화는 인도가 원산지이며 아리비아나 팔레스틴에 자생하는 작은 관목입니다. 이 꽃은 흰색과 노란색이 작은 송이로 뭉쳐서 피며 향기가 진하여 많은 사람이 좋아합니다. 바람을 타고 향기가 날아가면 멀리서도 고벨화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그럼 영적으로 고벨화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향기를 의미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선택받은 자들을 위해서 죽었습니다. 주님이 대신 나 대신 죽고 나를 속전하여 주셨습니다. 노아가 방주에 안과 밖을 칠한 역청도 코페르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발라야 합니다. 주님은 고벨화처럼 십자가의 진한 사랑의 향기가 온 세상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단지 인정을 하지 않을 뿐입니다. 구원받은 주님의 신부는 주님의 십자가 사랑이 엔게디의 고벨화 송이와 같은 향기라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사랑에 동참해야 합니다. 마리아가 자신의 전 재산이며 가장 귀한 향유 옥합을 깨어 주님의 장례를 준비했던 것처럼 우리도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림으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지막 날에 부활의 소망을 가지면서 이 세상은 잠시 왔다가 가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영원한 세계를 위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항상 몰약 향낭을 가슴에 달고 있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몰약 향기가 풍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 가슴에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나가서 살 때 예수님의 사랑이 넘쳐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의 썩은 냄새가 그리스도의 향기로 바뀌게 됩니다. 현재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욕을 먹고 목사나 장로나 권사나 크리스천들이 손가락질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몰상식하게 믿음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보다 더 못한 행동과 언행을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니 누가 믿겠습니까? 교회만 욕하고 그리스도인만 욕하게 됩니다.
이제라도 나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가슴에 품고 세상으로 나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다 보면 때가 되매 세상도 교회와 크리스천들을 인정해 줄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뼈를 깎는 각오로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고벨화 송이에 비유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십자가만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주님의 신부로서 십자가만 자랑하고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는 신앙인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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